Page 178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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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분과 2
시대를 마주하고 있던 고려의 선비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 고려의 정신과 고려의 역사를 찾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본 것은 「단군세기」의 독자적 역사체계와 사료적 가치이다. 「단군세기」는 『규원
사화』 등 민족 사서와도 다른 독자적인 역사체계를 갖췄고 『삼국유사』에 인용된 『古記』류, 『舊삼
국사』와 같은 고유 사서의 역사체계를 담고 있다. 삼한을 다스리는 대단군을 중심으로 진한의 역
사를 서술했고, 실체가 없는 기자조선을 부정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단군세기」를 행촌의 저작이
아니라 근현대 시기에 신채호 등 민족사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가공된 위서로 보고 있지만, 실제
내용을 비교 검토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신채호, 이상룡 등 민족사학자들
이 『환단고기』와 「단군세기」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행촌 이암이 소전거사로부터 받은 ‘신서와 역사의 진결’은 「태백진훈」과 「단군세기」가 단순히
심성론을 논한 책이거나 역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삼성조 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진 환인·환
웅·단군 환단시대의 도통 심법과 홍익인간의 가르침이 담긴 우리 민족의 참된 가르침이자 역사문
화 경전이란 것을 보여준다. 행촌 이암의 후손 일십당 이맥이 조선중기에 「태백일사」를 쓰고, 대일
항쟁기에 해학 이기가 『환단고기』를 감수하여 편찬하게 한 것은 행촌 이암이 그랬던 것처럼, 민족
의 위기,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나라의 혼, 선비의 소명의식이었다고 생각된다. 끝으로, 『환단고
기』에 담겨 있는 역사문화의 진실을 밝히는 이 시대의 최우선 과제는 단재 신채호의 말처럼 ‘고대
사 최대의 사건 삼조선 분립’이 실체를 밝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지난 2천년간 논쟁되어
온 기자조선·위만조선설에 의한 국통의 단절을 복원하는 길이며, 부여의 근원에 대한 체계적이고
정밀한 연구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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