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대한사랑 6호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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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문명의 중심지
                                            개창자 고주몽 성제
                 고                           개국    BCE 58년




                 구                           수도    졸본 → 눌견 → 국내성 → 환도성 → 평양성 → 환도성 →
                                                   평양 동쪽 황성 → 평양 → 장안성 → 평양성



                 려                                 (1)고추모단군, (2)유리명제, (3)대무신제, (4)민중제, (5)모본제,
                                                   (6)대조제, (7)차대제, (8)신대제, (9)고국천제, (10)산상제, (11)동천제,


                                             계보    (12)중천제, (13)서천제, (14)봉상제, (15)미천제, (16)고국원제,
                                                   (17)소수림제, (18)고국양제, (19)광개토열제, (20)장수열제,
                                                   (21)문자명제, (22)안장제, (23)안원제, (24)양원제, (25)평원제,

                                                   (26)영양제, (27)영류제, (28)보장제


                                             계율    오계(충, 효, 신, 용, 인)



                                             고주몽 성제는 북부여를 계승하여 건국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광개토왕릉

                                           비문에서 시조 추모왕이 북부여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어서 확인할

                                           수 있다. 『삼성기 상』에 의하면 고주몽 성제는 북부여를 계승하였으며, 단군
                                           의 옛 제도를 회복(復檀君舊章)하고, 옛 땅을 되찾자는 의미의 ‘다물’을 연호

                                           로 정했다고 한다. 또한 『단군세기』, 「삼한관경본기」<번한세가 하> 등에 의하

                                           면 ‘종실宗室 해모수’라고 전하고 있다. 즉 해모수는 단군조선의 정통성을 잇
                                           고 있는 ‘종실宗室’의 인물인 것이다. 따라서 해모수의 북부여를 뿌리로 둔 고

                                           구려는 명백히 단군조선의 종통을 이어받았고, ‘다물’ 연호를 통해 단군조선

                                           의 고토를 회복하는 것을 건국 정신으로 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건국 이념인 ‘다물’ 정신이 꽃피운 때는 광개토열제 때였다. 남으로는 왜를,

                                           북으로는 내몽골과 만주벌판을 아우르는 단군조선의 고토를 다시 회복하였

                                           다.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를 같은 핏줄로 인식하여 멸망시키려 하지 않았다.
                                           결국 고구려가 중국 한족 등 외세의 침략을 막아주는 병풍 역할을 하여 백제

                                           와 신라, 가야는 수백년간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고구려 말기에도 이러한 정

                                           신은 변하지 않았다. 한창 삼국이 전쟁으로 몸살을 앓던 시기 연개소문은 백
                                           제의 상좌평을 만나 양국이 병존하는 방법을 세우고, 신라의 김춘추를 만나

                                           삼한의 형제로서 연합정권을 세울 것을 제안했다.




                                                                                            국통맥 특집 | 5 고구려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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