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및 신문기사
[대한사랑 초대석] 김종성 (전)보훈처 차장(1)
대한사랑 초대석
최원호 대한사랑 학술이사
{대한사랑 초대석}은 대한사랑과 상생방송의 협업으로 역사문화광복운동을 꾸준히 해오는 전국의 역사광복꾼, 그리고 회원님들께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철학 등 인문학 분야에서 이 분은 꼭 모셔서 이야기를 들어야 되는 분들을 초청한 프로그램입니다.
그 첫 시간으로 평생 보훈 전문가로 살아온 김종성 (전)보훈처차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들] 책을 펴내다.
제가 국립묘지를 자주 다니는 편입니다만 국립묘지에 얽힌 사연들이 정말 많습니다. 혼자만 알 일이 아니라 찾아서 알려야겠다 싶어서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현충원을 방문할 때면 주로 묘역 주위로 나있는 둘레길을 산책을 하는데
저 빼곡하게 늘어선 저 빛 바랜 비석이야말로 정말 대한민국의 역사구나~
그래서 그 속에 담긴 진실을 찾아서 알리는 게
내가 보훈을 한 사람으로서의 소임이 아닌가 싶어요.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이란?
아일랜드 역사를 공부해보면~ 아일랜드가 길게는 750년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수많은 독립투쟁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독립투쟁을 하다가 소년들이 들판에서 스러져 죽은 곳에 보리싹들이 올라왔어요. 그게 왜 올라왔겠어요? 그 등짐으로 보리나 귀리 같은 걸 전투식량으로 지니고 다녔기 때문에 거기서 보리싹이 올라오는 초록색 들판이 된 거죠.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이란 초록색 잔디 아래 잠들어 계신 분들을 말합니다.
윌리엄 에이츠의 부활절 1916, 이라는 시 한 구절에
'초록색이 덮힌 곳이라면 어디까지라도'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왜냐면 그게 아일랜드의 초록색은 '불굴의 민족혼'을 상징하거든요. 우리도 마찬가지죠. 풀보다 잔디보다 더 강한 식물이 없잖아요. 어디서든 살아남는 풀과 잔디처럼 그 속에 불멸의 혼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을 정한 것이죠.
보훈정책의 이유..
보훈은 대한민국의 과거-현재-미래 라고 합니다.
과거를 바탕으로 정신적 바탕을 튼튼히 함으로써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결국은 보훈의 궁국적 목적이라는 것은
‘기억을 통한 연대’에 있습니다.
기억을 전부 같이 공유함으로써 연대와 통합의 힘이 나온다고 봅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에르네스트 르낭이 1882년 소르본대학에서 강연한 <민족이란 무엇인가>에서 말하길,
“민족이란 ‘희생의 욕구로 구성된 거대한 결속’이다.”
'희생의 욕구'가 없으면 국민(민족)이라는 게 형성이 안된다는 거죠. 그것을 증명한다면 그 나라는 존재할 만하고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기억을 통한 연대라고 하는 보훈의 목표와 르낭의 ‘민족의 정의’와 맞닿아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은 과거-현대-미래를 연대하는 힘이 보훈에 있기 때문에 과거를 대상으로 정책을 펴고 행정을 펴는 부서는 아마 보훈이 거의 유일한 것 같습니다.
세계의 국립묘지 역사..
국립묘지 역사는 서양에서부터 시작이 됐는데, 가장 오래된 곳은 고대 아테네 케라메이코스에 위치한 전사자 묘지입니다.
부족을 초월한 묘지였습니다. 부족별로 각기 달리 무덤을 쓰고 있었는데 전사자는 한 곳에 모아서 공통으로 묘지를 만들었죠. 기원전 432년 아테네의 유명한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거기에서 연설한 원문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근대에는 미곡의 남북전쟁 때 시작됐는데, 근대의 첫 국립묘지는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를 시작으로, 링컨 대통령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라는 유명한 연설을 한 게티스버그 국립묘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00년에 대한제국이 장충단을 세웠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를 지키다 순국한 장졸들의 무덤이 장충단입니다. 무덤을 만들어준 것 뿐만 아니라 봄 가을마다 군악대가 나가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전 남소영의 유지에 장충단을 세웠다.
원수부에서 조칙을 받들어
나랏일을 위해 죽은 사람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함이었다.”[고종실록]
“장충단을 특별히 만들어 제사를 지낸 뒤로
군사들이 이루 형언할 수 없이 감격하고 고무되었습니다.” [고종실록]
이것이 바로 국립묘지를 세우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장충단이 세워졌는데 일제 강점기가 되면서 가장 먼저 훼손하고 파괴한 게 뭔지 아세요?
바로 장충단이 없어져버린 겁니다. 공원을 만들어버렸죠.
우리가 흔히 장충단 공원으로 부르는데 지금은 비석만 남아있죠. 그리고 국립묘지가 없었기 때문에 거기에 6. 25 전쟁 때 전사자들을 일부 묻기도 했습니다. 1953년 동작동에 입지를 정하고 1956년 6월 6일, 국군묘지를 개원해서 그 해에 현충일 추념식을 거행했습니다. 현재 전국의 국립묘지는 12곳에 있는데요~ 경기, 강원도 예정하고 있어서 전국의 권역별로 국립묘지가 다 들어설 수 있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