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회원가입

역사자료실

민족주의 사학 개요

민족주의 사학 개요

 


1)서론


19세기 후반의 한국사회는 봉건사회를 타도하는 근대적 개혁과 제국주의세력으로부터의 독립 및 그것을 위한 민족의식의 강한 발현이 동시에 필요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의 역사학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근대 역사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2)박은식(1859-1925)의 역사관


박은식은 투철한 개혁이념과 제국주의 침략에 적대적 성격을 가지고 개혁기의 역사학을 계승하여 근대역사학의 방법론을 직접 우리역사에 도입함으로써 우리 역사학을 근대역사학으로 성장시켰다.


박은식의 사관의 변천은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시기는 1898년까지로 주자학을 공부한 시기이다. 두 번째 시기는 1910년까지로 언론활동과 민중계몽활동을 한 시기이다. 세 번째 시기는 1925년까지로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던 시기이다. 박은식의 역사관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시기는 두 번째 시기 이후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시기의 박은식의 역사관은 서구의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자강론에 기초를 두고 자국 정신과 국사를 강조하였다. 또한 민족정신의 표상인 민족적 영웅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동명성황실기],,[천개소문전] 등은 이때 쓰여진 것이다. 그러나 이때 박은식이 가지고 있었던 사회진화론은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였기 때문에 제국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였다. 또한 민중을 주체로 보지 못하고 영웅주의적 사관에 입각에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관은 세 번째 시기 이후 일정한 변화를 맞게 된다.


세 번째 시기의 주요 저작으로 1915년에 저술하여 자신의 역사관을 국혼론으로 체계화한 [한국통사](1915)와 국혼론적 역사인식을 독립운동사 서술에 적용한 [한국독립운동지혈사](1920) 등이 있다.


이 사서들의 역사서술의 방식은 역사적 사실의 발달과정을 인과관계의 면에서 분석, 비판, 종합해가는 근대 역사학의 방법론으로써 사건 중심의 장으로 구성하는 근대 역사학의 방법론을 의식적으로 도입하여 일제의 침략과정을 폭로하였다.


박은식은 혼 즉 정신의 문제가 민족이나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관건으로 보고 민족혼의 중심인 국사가 존손하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유교사상 속에 민족혼을 찾고, 민족혼의 양양 보급을 위해서 유교(양명학)의 종교화를 꾀하여 그러한 민족혼의 유지를 통한 국권의 회복을 주장하였다


박은식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이후 국혼론적 역사인식이 지니는 관념론적이며 영웅주의적 한계를 극복해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독립투쟁의 실천과정을 서술하고 또 독립투쟁에서의 노동자, 농민 등 민중의 역할 중시하였다. 그러나 사회진화론적 역사인식과 관념론적 성격 그리고 영웅사관을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민족혼의 진흥도 유교의 개혁을 통해서 구하고자 하는 역사인식사의 한계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3)신채호(1880-1936)의 역사관


신채호는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는 역사의식과 중세사회에서 근대사회에로의 사회개혁이 전제되는 역사의식을 통해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학을 완성시켰다. 신채호의 역사의식은 박은식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과 민족의식의 강렬함에 있어서 철저한 것이었다.


신채호의 현실인식과 사회사상의 변천과정은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시기는 1905에서 1910년까지로 언론을 통한 계몽운동기이다. 두 번째 시기는 1911년에서 1923년까지로 민족해방운동기이다. 세 번째 시기는 1920년대 중반이후로 무정부주의로 기울어져 있던 시기이다.


첫째 시기에는 신채호는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개화자강론(자력에 의한 주체적인 실력양성)을 주장한다. 그는 전통적인 유교사관(주자론적인 명분론과 정통론 그리고 사대주의적 조화사관)을 통렬히 비판하는 한편, 새롭게 침투해 들어오던 일인들의 식민주의 사관(기존 기자동래설에 대한 부정, 임나일본부설을 부정)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였고 민족주의 사관을 처음으로 제시하여 역사서술의 주체를 민족으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그는 일본의 한국침략을 약육강식의 국제질서 속에서 피할 수 없는 대세로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회진화론적 현실인식에 입각하고 있는 한, 제국주의 국가의 약소국에 대한 침략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역사서로는 [이태리건국삼걸전], [독사신론] 등이 있다.


두 번째 시기는 일본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노선을 견지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역사서술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조선상고사]의 총론, [조선사연구초], [조선상고문화사] 등이 이 시기에 쓰여진다. 그는 여기서 우리 역사의 새로운 체계화를 위한 역사 이론을 아와 비아의 투쟁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단순히 아와 비아의 투쟁을 역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밑바탕에 깔린 투쟁의 정신사를 역사로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는 역사를 발전적으로 이해하고 역사적 사실의 인과관계를 사회현상 속에서 파악하려하였다. 외적으로는 주체성의 유지 위에서 자아를 찾고, 내적으로는 각 시대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역사적 현실을 모순 상극의 관계에서 파악함으로써 그러한 투쟁 그러한 모순 상극이 지양되는 가운데서 새로운 문화가 창조되는 세계사적 보편성을 가진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학은 시간적 계속과 공간적 발전으로서 일어나는 사회활동의 상태와 거기서 발생한 사실들을 사실 그대로 객관적으로 기술해야 하는 것이며 저자의 목적에 따라 좌우되거나 첨부 변개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객관적 역사서술로서의 역사학 즉 역사학의 독자성을 강조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역사의 주체로서 민족이 강조되고 민족 속의 민중이 의식되고 있었다. 독립의 전취는 민중의 힘으로써 조직적으로 일제의 통치질서를 교란, 타도하는 것이 유일한 방도로 생각 하였다. 신채호의 민족주체의 민족주의 사상은 민족 내부의 민중 주체로 한 단계 더 발전하였던 것이다.


세번째 시기에 신채호의 역사관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러나 무정부주의는 제국주의와 지배계급에 대한 철저한 비판의 논리를 갖추고 있는 이념으로써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념으로써 신채호에게 받아들여 졌을 것이다. 신채호는 역사발전을 변증법적으로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주로 정신적 활동의 결과로 인식하는 관념론적 문화사관의 측면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역사인식은 부르조아민족주의이념에서 출발하여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식민지하 민족해방운동의 실천적 경험 속에서 또한 사회과학이론을 섭렵을 통해서 이 이념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단초적으로 극복해 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반영하였다.


후기 민족주의 역사학은 박은식, 신채호의 한국사 전통을 계승한 정인보, 안재홍, 문일평 등에 주도되었다. 이들은 특히 신채호의 역사 인식에 깊은 영향을 받아 조선정신, 민족정신의 회복을 역사연구의 제일 실천적 목표로 삼았으며 나아가 이를 정신사관으로까지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정인보의 얼의 사관’, 안재홍의 민족정기’, 문일평의 조선심의 주창이 그것이었다. 다른 한편 이들은 신채호가 발견하였던 사회발전의 논리와 발전의 주체로서의 민중의 의의에 대해서도 주목하였다. 예컨데 문일평은 민중세계의 역사적 역할을 주목하여 민중의 투쟁이 역사발전의 주요한 계기임을 인식하였고 이를 위한 실천적 노력으로서 민족사의 대중화 작업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실천적 현실인식과 학적 배경으로부터 민족주의역사학이 주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은 고대사분야와 실학이었다. 이들을 특히 고대사연구를 통해 식민주의역사학의 한국사 왜곡으 폭로하고 이 시기 일부 한국인학자들의 일제에의 학문적 추종, 그 식민지화를 비판하고자 하였다. 신채호의 주장을 발전시킨 정인보의 [오천년간 조선의 얼], 안재홍의 [조선상고사감] 등은 그 대표적 업적이었다.


그러나 후기 민족주의역사학은 여러 측면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민족부르조아지의 역사관인 관념론적 문화사관에 머물러 있었고 계급과 민족분제의 차별성을 인식하지 못하여 이를 정충시키거나 계급을 민족개념에 종속시켜 과학적인 사회발전의 논리나 민중개념을 확립할 수 없었으며 소박한 민중주의에 입각해서 민족정신의 회복을 주장하였다.

 

(인터넷 자료)

0
0
이 글을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이 글을 트위터로 퍼가기 이 글을 카카오스토리로 퍼가기 이 글을 밴드로 퍼가기

역사자료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공지 2024년 종교문화여행 치유순례 대한뉴스 2024-11-06 1,814
공지 2024세계개천문화대축제(10/3~10/9) 뭉개구름 2024-09-13 4,849
3 [환단고기 진서론]오성취루가 자주 있는 현상 아닌가요? 열혈남아 2021-01-07 1,299
2 [환단고기 진서론]오성취루 현상 배경지식 열혈남아 2021-01-07 1,121
1 환단고기 사이트 소개 대한뉴스 2020-12-11 1,146
EnglishFrenchGermanItalianJapaneseKoreanPortugueseRussianSpanishJavane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