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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고조선은 부산역사와 직접적인 관련없다”…‘역사 쿠데타’적 발상
부산시 “고조선은 부산역사와 직접적인 관련없다”…‘역사 쿠데타’적 발상
시사포커스 2023.10.15
이찬구 편집주간
부산시가 고조선을 부정하는 답변을 시민단체에 보내 충격
시 “부산역사는 고조선과 관련없어 부산의 청동기일뿐”
시민단체 “부산시민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짓밟는 행위를 당장 멈춰라”
부산지방사를 고조선과 단절시키는 것은 ‘역사 쿠데타’와 같은 발상
2030 엑스포에 ‘부산사람은 고조선의 후손 아니다’고 선전할까
부산의 시민단체들이 지난 달 9월 14일 “임나일본부 주장하는 부산시사(市史) 편찬중단하라”고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 부산연대 제공)
지난 12일 ‘전라도천년사’가 일제의 임나일본부설 인용으로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논란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편찬 중인 ‘부산시사(釜山市史)’에 고조선 누락과 역사왜곡이 발견돼 논란이 되고 있다. 가야고분군의 임나 지명이 유네스코(UNESCO)로부터 지적을 받았다는 교훈을 한국 역사학자들은 명심해야 할 때이다.
부산광역시 문화유산과가 지난 10일, 시민단체의 질의에 보내 답변(문화유산과-15360)을 통해 “고조선은 부산역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부산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적과 유물을 통해 부산의 청동기 시대를 서술한다”고 충격적인 말을 했다. 이는 시민단체의 강(姜)모씨가 부산시의 답변서를 지난14일 오후에 공개해 알려졌다.
식민사관청산 가야사부산연대(부산연대)는 지난달 14일 부산시장과 부산시사편찬위에 보낸 ‘부산시사 편찬중단 촉구 서한문’에서 ▲ 단군의 역사를 단절시켜 부산 시민을 누구의 자손인지 모르게 함 ▲ 동북공정을 인정하여, 대한민국을 사대주의 소중화로 만들고 있음 ▲ 임나일본부를 수용하여 다시 식민사관 노예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부산연대는 고조선 부문에 대해 “단군조선을 기술하지 않은 것은 우리 부산 시민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없애고 뿌리 없는 자식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이어 부산연대는 “大韓人(대한인)을 역사 없는 민족으로 만드는 것이고, 중국의 식민지로, 일본의 황국신민으로 만들려는 수작이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반 토막 내고, 부산시민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짓밟는 행위를 당장 멈추라”고 항의하며 “우리 부산 시민의 정체성, 단군의 역사를 기록하라”고 촉구했는데, 이에 대한 답변서가 이같이 온 것이다.
부산시는 2022년부터 새로운 ‘부산시사’ 편찬사업에 들어갔다. 과거에 나온 ‘부산시사’(1989~1991년) 발간 이후인 1990년 이후 지역의 변화상과 지역사 연구성과 등을 추가해 담고자 한 것이다. 이번 ‘부산시사’(제1~4권, 통사편)는 역사학‧행정학‧경제학‧국문학 등 각 분야 전문가 27명이 참여하여 공동 편찬한 역사서로서 부산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안내서라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부산시사’의 문제점을 알고 있는 시민들이 일찍부터 이의를 제기하자 부산시사편찬위는 지난 8월 14일부터 1개월간 e-북으로 시민 공람을 했고, 지난달 20일까지 공람의견서를 접수했다. 접수된 공람의견서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지방사 편찬의 문제는 광주, 전라남북도 등 3개 광역단체가 추진하고 있는 ‘전라도천년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몇몇 학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제3자의 검토없이 수록해 내용의 적절성 문제로 시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담당공무원들이 전문학자들을 맹목적으로 믿는데서 생기는 폐단이다.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등재시 학자들의 일방적인 말만 믿고 남원을 일본 임나지명인 ‘기문’, 합천을 같은 ‘다라’로 표기했다가 유네스코로부터 수정하라는 권고를 당하는 망신을 또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학자들은 대개 자기의 학설을 관철하기 위해 글을 쓰지, 공공을 위해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물의를 빚는다.
부산광역시 문화유산과가 지난 10일, 시민단체의 질의에 보낸 답변(문화유산과-15360) 중 일부이다. (자료 / 부산연대 제공)
부산시가 답변한 “고조선은 부산역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부산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적과 유물을 통해 부산의 청동기 시대를 서술하였다”는 말은 역사를 포기하는 말과 같다. 마치 부산역사가 고조선에서 분리되어 발전해온 것처럼 왜곡하는 것은 우리 민족사의 정통성을 뿌리 채 부정하는 말로 읽힐 우려가 없지 않다.
청동기 시대는 이미 국가가 형성된 시기라는 것은 보편적인 상식이므로 그 부산지역을 통치한 정치체를 찾아 부산의 역사를 그 정치체에 귀속시켜 서술하는 것이 합당한 역사서술일 것이다. 부산이 고조선에 포함된다는 것은 얼마든지 그 관련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런 보편적 상식을 벗어나는 것은 역사왜곡이 될 수 있다.
‘삼국사기’ 박혁거세 조에는 “(서라벌)에 앞서 조선(朝鮮)의 유민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누어 살면서 6촌(六村)을 이루고 있었다”고 명백히 밝혀주고 있다. 서라벌(신라)이 건국되기 전에 이미 조선(고조선)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뜻이다.
또 이승휴의 ‘제왕운기’에 “단군은 조선 지역에 웅거하며 왕이 되었는데, 옛 시라(신라), 고례(고구려), 남북옥저, 동북부여, 예와 맥은 모두 단군의 계승자(후손)였다”고 밝혀주고 있는 것에서도 이를 입증할 수 있다. 신라, 고구려가 단군의 계승자라고 말한 것은 고조선이 존재하던 그 시기에 고조선의 정치체에 귀속돼 거수국으로 존속했다고 윤내현 교수는 해석했다.
이어 윤 교수는 ‘제왕운기’를 해석하기를, 고조선의 붕괴 이후에 북쪽에는 부여가 큰 나라로 일어났고, 그 부여의 남쪽에는 한(韓)과 신라가 후계 나라로 일어났다고 했다.
중국 문헌에도 삼한은 그 면적이 사방 4천리라고 했다. 이는 한반도 전역과 만주 일대를 포함한 광역 삼한을 의미한다. 다만 신라는 한(韓)의 영역 가운데 경주에서 일어나 후에 경상남북도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행 한국사교과서도 부산, 경상도 일대를 고조선의 비파형동검의 출토지로 표시해 ‘고조선 문화분포’ 범위임을 분명히 말해 주고 있는데, 부산의 청동기가 고조선과 관련없다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가 부산, 경상도 일대를 고조선의 비파형동검의 출토지로 표시해 ‘고조선 문화분포’ 범위임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사진 / 고등학교 한국사, 미래엔, 2020)
그런데 종래에는 고조선의 영역을 한반도 북부로 국한해서 생각했기 때문에 신라에 온 고조선 유민을 북부에서 내려온 것으로 보았으나, 원래부터 거주했던 토착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윤내현 교수의 새로운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종합하면, 부산시가 “고조선은 부산역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한 말은 거짓말이다. 부산에서 나온 청동기도 부산의 청동기가 아니라 비파형동검처럼 ‘고조선의 청동기’라고 서술해야 마땅하며, 그 청동기 주조의 주체도 고조선사람이었으며, 다만 고조선 붕괴 후에 조선의 유민으로서 신라 건국에 참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부산시사’는 삼한을 단편적으로 언급하면서도 그 모체인 고조선에 대해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았다가, 갑자기 ‘변진독로국’을 등장시켜 이를 고대 부산지역의 독자적인 정치체라고 서술하고 있다.
‘부산시사’는 “변한 12국 가운데 고대 부산과 관련하여 종래 많은 주목을 받은 국은 ‘변진독로국’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의 사서에서는 고대 부산 지역의 ‘소국’ 정치체로서 ‘독로국’은 보이지 않고, 거칠산국(居柒山國)·장산국(萇山國)·내산국(萊山國)·봉래현 (蓬萊縣) 등 얼핏 보면 전혀 다른 명칭이 나온다”(1권 63쪽)고 말하면서 음상사(音相似)를 이유로 독로국을 강조한다.
부산(동래군)이 독로국(瀆盧國)이라고 처음 주장한 자는 유감스럽게도 ‘일한고사단’을 쓴 요시다 도고(吉田東伍)였고, 그의 후학인 이병도이다. 이병도는 요시다와 같이 당시 ‘경남 동래군’을 독로국의 위치로 보았다.
그런데 ‘부산시사’ (1권 63쪽)는 독로국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아닌 중국 문헌을 유일한 근거로 삼고 있다.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삼국지’(위서 동이 한전 변진조)에는 독로국(瀆盧國)에 대해 “독로국이 변진 24국 중의 하나라는 것과 독로국이 왜(倭)와 접계(接界)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독로’가 부산 ‘동래’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같은 곳으로 비정했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독로를 ‘동래’가 아닌 ‘거제’라고 주장하는 또 다른 학설이 있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단지 이유가 있다면 왜와 접계하고 있다는 점이 유일한 것 같다. 조선총독부가 어떻게 해서라도 왜의 강역을 넓히기 위해서는 독로국의 도움이 필요했을까.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준왕의 남하, 위만조선과 평양 낙랑군이 필요했던 것(1권 66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또한 식민사관을 맹종하는 것과 같다. 만약 왜를 살리기 위해 고조선을 부정하고 독로국을 동원했다면 역사의 반역이 될 것이다.
더욱 더 가관인 것은 확실하지도 않은 부산에 ‘독로국’을 비정한 것도 모자라, 그 독로국이 김해 가락국과 연맹을 맺어 발전했다니 사료 조작이 도를 넘고 있다. 부산이 언제 가락국에서 독립하여 상호 연맹을 맺었다는 말인가? 맺은 것이 확실하다면 문헌적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전라도천년사’처럼 자청하여 임나일본부에 충성하려는 것이 아닌가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부산시는 만약 2030 엑스포가 열릴 때 외국인들에게 부산사람은 고조선의 후예가 아니라 ‘독로국의 후손’이라고 설명할 것인가. 외국인들이 부산 역사책을 찾으면 이 ‘부산시사’를 선물로 줄 것인가. 그런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부산시에 묻고 싶다.
따라서 ‘부산시사’는 기본적으로 국사(國史)로서의 고조선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지방사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는 지방사가 중앙정부의 국사에 도전하는 역사 쿠데타와 같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여 향후 부산시가 어떤 조치를 취할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