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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이 된장되는 강단유사사학 (5.요동반도 백제)

1. 사료

『사기정의』가 인용하는 『괄지지』에 “백제국 서남 발해 중에 큰섬 15개가 있는데 모두 읍락이 있고 사람이 거주한다. 백제에 속한다.”

【正義】括地志云:「百濟國西南渤海中有大島十五所,皆邑落有人居,屬百濟。」

『三國史』 「百濟本紀」 義慈王 麟德二年, 與新羅王㑹熊津城, 刑白馬以盟. 仁軌爲盟辭, 乃作金書鐡契, 藏新羅廟中, 盟辭見新羅紀中. 仁願等還, 隆畏衆㩗散, 亦歸京師. 儀鳳中, 以隆爲熊津都督·帶方郡王, 遣歸國, 安輯餘衆. 仍移安東都護府於新城以統之. 時新羅強, 隆不敢入舊國, 寄理髙句麗死. 武后又以其孫敬襲王, 而其地已爲新羅·渤海靺鞨所分, 國系遂絶.

[[당나라] 인덕(麟德) 2년, 융(隆)이 신라 왕과 웅진성에서 만나 흰 말을 잡아 맹세하였다. 인궤가 맹세하는 글을 지었으며, 이것을 금으로 새기고, 무쇠로 책을 만들어 신라 종묘 안에 두었는데, 이 맹세의 글은 신라본기(新羅本紀)에 보인다. 유인원 등이 귀국하니, 융은 백성들이 배반하여 흩어질 것을 염려하여 그 또한 당나라 서울로 돌아갔다. 당나라 의봉(儀鳳) 연간에 융을 웅진도독(熊津都督) 대방군왕(帶方郡王)으로 삼아 귀국하게 하여 남은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곧이어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신성(新城)으로 옮겨 통할하게 하였다. 이때 신라가 강성해지니 융이 감히 고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고구려에 가서 의탁하고 있다가 사망하였다. 무후(武后)가 또한 그의 손자 경(敬)으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케 하려 했으나 그 지역이 이미 신라·발해말갈에 의하여 분할 통치되고 있었으므로 나라의 계통이 마침내 단절되었다.]

『舊唐書』 권199 「百濟傳」, 其地自此為新羅及渤海靺鞨所分

(그 땅은 이로부터 신라와 발해말갈이 나누어가진 바 되었다)

『新唐書』 권220 「百濟傳」, 而其地已為新羅、渤海靺鞨所分

(그 땅은 이미 신라와 발해말갈이 나누어가진 바 되었다)

『통전』 변방 百濟 『통전』 邊防一 東夷上 百濟, 其舊地沒於新羅 城傍餘衆後漸寡弱 散投突厥及靺鞨 其主夫餘崇竟不敢還舊國 土地盡沒於新羅·靺鞨 夫餘氏君長遂絕

(그 옛 땅은 新羅로 되었고, 城과 주변의 남은 무리도 후에 점차 약해져서, 突厥과 靺鞨에게 흩어져 투항하였다. 백제왕 夫餘崇은 끝내 옛 나라로 돌아갈 수 없었고, 土地는 모두 新羅와 靺鞨에 편입되었으며, 夫餘氏 왕가는 마침내 끊어지게 되었다.)

『신당서』 권 제220 신라전 “然多取百濟地 遂扺高句麗南境矣.”

『삼국사』 「신라본 문무왕 15년 ‘然多取百濟地, 遂扺髙句麗南境爲州郡

(그러나 백제 땅을 많이 취하였고, 마침내 고구려 남쪽 지역까지 받아 주군으로 삼았다)

『당회요(唐會要)』 권제95 신라전 “盡有百濟之地 及高句麗南境”

(이미 백제의 땅을 모두 차지하였다)

2. 사료의 상식적 해석

발해 중에 서남쪽에 큰 섬이 있는 곳은 요동반도밖에 없다. 『괄지지』는 638년부터 642년까지 편찬된 책으로 현재 전하지는 않지만, 위 『괄지지』의 기사를 인용한 장수절의 『사기정의』가 『사기』의 3가주석으로 인정 받는 권위 있는 사서이고 736년에 저작된 만큼 『사기정의』가 인용한 『괄지지』의 백제 영토 기사는 부인하기 거의 불가능한 자료이다.

괄지지 만으로도 요동반도는 백제임을 알 수 있는데, 삼국사, 신당서, 구당서, 통전의 요동반도 백제를 신라와 대진이 나누어 가졌다는 분할기사로 요동반도 백제는 더욱 명확해진다. 한반도 서남부를 대진이 가져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라의 영토확장에 대한 사료는 삼국사 신당서는 백제의 땅을 많이 취하였다 하고, 당회요만 백제 땅을 다 취했다고 한다. 다른 사료에 의해 요동반도 백제 분할이 분명하므로, 『당회요』가 신라가 백제 땅을 다 차지하였다고 한 것은 ‘거의 다’를 간단히 ‘다’라고 쓴 것에 불과하다.

3. 강단유사사학의 똥설

강단유사사학은 8세기에 살았던 장수절이 백제가 존재하고 있었던 때 기록한 지리지를 인용한 것을 모른 척 한다. 언급하면 거짓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삼국사』 「백제본기」 부여융과 신라왕의 웅진성 맹약 기사에 대한 주석에서 『통전』의 기사를 다음과 같이 고의로 말갈을 제외하여 번역하고 있다. 그들은 사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위서라 하거나 오역을 한다.

『通典』 권185 百濟傳에는 “그 옛 땅을 신라에게 빼앗기고 성(城)과 나머지 무리가 점점 적어지고 약해지더니 돌궐과 말갈로 흩어져 들어갔으며, 그 주인 부여숭(夫餘崇)은 마침내 옛 나라로 감히 돌아가지 못하고 땅을 모두 신라에게 빼앗기니 부여씨(夫餘氏) 왕은 마침내 끊어졌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들은 일제의 소설을 전제하고 사료를 소설에 맞추어 해석한다. 위 주석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똥을 처먹는다.

“신라와 발해말갈이 나누어 가졌으므로 : --- [그러나 발해는 6998년에 중국 지린성[吉林省] 둔화[敦化]에서 고구려 유장(遺將)인 대조영이 건국한 나라이므로 발해가 한반도 남부의 백제 땅을 신라와 나누어 가졌다는 말은 지리적으로나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따라서 백제 땅이 신라와 발해말갈=발해에게 분할되었다는 것은 한반도에 있던 백제 고지(故地)는 신라 영토가 되고, 唐나라가 옛 백제 땅에 설치하였다가 요동지역으로 옮긴 웅진도독부가 발해 영토에 포함된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료에 요동반도가 백제 땅이라고 나오는데, 백제를 대진과 신라가 나누어가졌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먼저 결론을 내리고, 말도 안 되는 근거를 제시한다. 웅진도독부가 옮겨진 곳은 그곳이 백제였기 때문이다. 백제와 무관한 곳에 웅진도독부를 옮겼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러한 곳을 차지한 것을 백제 영토를 나누어가진 것으로 말할 수는 없다. 이들이 아무리 똥을 쏟아내도 괄지지의 기사는 명백하므로 괄지지에 대해선 이들은 묵언수행한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삼국사』 「신라본기」 유인궤 칠중성 공격기사에서 그들은

『신당서』 권 제220 신라전 “然多取百濟地 遂扺高句麗南境矣.”과 『당회요(唐會要)』 권제95 신라전 “旣盡有百濟之地 及高句麗南境”를 열거한 후 『당회요』의 문언에 따라 “이미 백제의 땅을 모두 차지하고 고려(고구려)의 남쪽 경역에 이르렀다”고 해석한다. 둘의 내용이 다름에도 다르다는 언급도 없이 당회요의 문언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들이 오역과 사기와 묵언수행에 의해 지키려는 것은 신라가 고구려를 멸하고 차지한 영토가 대동강 원산만이라는 일제의 소설이다.

​4.

신라는 한반도 백제는 665년 이전 완전히 병합하여, 한반도에 파견되었던 당군은 665년 돌아갔다. 670년 이후 신라와 당의 전쟁은 요동반도와 고구려 평양(요양)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한 상고사 참조)

강단유사사학은 670년 이후 신라가 공격하는 백제도 한반도백제라 하는데, 664년에 신라가 완전히 장악한 지역이 왜 다시 전투를 치러야만 점령할 정도로 신라의 세력권에서 멀어지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요동반도 백제만큼 사료가 풍부한 경우도 드물 것이다. 이 모든 사료를 부인하고 일제 똥을 처먹기 위해 궤변과 오역과 사기로 일관하는 강단유사사학과 그것을 추종하면서 강단유사사학만이 학문이고 그것을 논박하면 환빠라 하는 쓰레기들이 사라져야 우리나라가 바로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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