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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

식민사관 맞서 독립운동가 역사관 계승하는 정당 나와야

[백성호의 현문우답]
상해임시정부 법통, 해방 후 단절
민주당 뿌리, 한독당 아닌 한민당
국민의힘 뿌리는 민자당에 있어
정당 이념 뚜렷해야 도덕성 생겨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역사학자 이덕일(60) 소장을 만났다. 그는 강단을 중심으로 구축된 일제 식민사학에 맞서 항일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을 계승하는 민족사학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역사학자다. 유튜브 채널 ‘이덕일 역사 TV’의 구독자는 현재 3만5000명이다. 구독자의 열성도를 고려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이덕일 소장은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대부분 역사운동하는 사람들이었다. 요지는 이랬다. “식민사학이 적폐 중의 적폐인데, 이제는 독립운동가 역사관을 계승하는 민족사학을 (새 정부에서) 지원하지 않겠느냐.” 백범 김구와 석주 이상룡 등 일제에 항거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정치관과 역사관을 연구하고 계승하는 역사가 이제 대접받지 않겠느냐는 응원 전화였다.

결과는 달랐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는 독립운동가 김승학(독립군 총사령관 역임) 등 생존 독립운동가들이 저술한 『한국독립사』재간행 작업을 지난 정부부터 하고 있었다. 이 소장은 “독립운동가들이 직접 작성한 『한국독립사』의 1차 자료를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기증하는 대신 연구 및 재간행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갑자기 강제 중단됐다”며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도발, 친일 역사학을 비판하는 우리 연구소의 저서 5권에 대해서도 한중연이 '출간하면 안된다'고 전화로 통보했다. 교육부에 이의신청을 했다. 당연히 촛불 정권의 교육부에서 ‘말이 되느냐’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한술 더 떠 출간 연구비 일부를 환수한다는 교육부 전화와 공문이 날아왔다”고 밝혔다. 그는 “강단과 역사학계를 장악한 식민사학 측이 문재인 정권에서 역사 관련 국책기구를 모두 장악한 결과”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Q : 문재인 정부는 상해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고 자처하지 않나.

A : "족보가 백범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국독립당(한독당)을 정신적으로, 혹은 인맥적으로 계승했다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해방 공간의 한독당이 아니라 한국민주당(한민당)을 계승한 정당이다. 이름 자체도 ‘민주당’이지 않나.”

Q : 한민당은 어떤 정당이었나.

A : “백범의 한독당은 상해임시정부의 여당이었다. 강령도 냈다. 해방 후에 정권을 잡으면 토지국유화 정책 등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걸 본 친일파들의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직접 정권을 잡겠다고 나설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임시정부 봉대(받듦)와 여운형의 인민공화국 타도’를 선언하며 한민당을 세웠다. 한민당의 주축은 지주 세력과 친일 세력이었다.”

Q : 한독당과 한민당, 둘은 사뭇 다르지 않나.

A : “물론이다. 나중에 미군정 시기에 한민당은 사실상 여당 역할을 하게 된다. 한민당은 미군정 하에서 좌익은 물론이고,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도 척결했다. 한민당은 특히 한독당 세력을 아주 강하게 숙청했다.”

Q : 백범의 한독당은 결국 어떻게 됐나.

A : “해방 후 첫 선거(1948년)에서 한독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안’에 찬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제헌의회 의원 임기는 2년이었다. 1950년 두 번째 선거에서는 한독당이 후보를 낸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독당이 참여하면 제1당이 될 게 뻔했다. 이때 백범이 갑자기 암살을 당했다. 결국 선거 때문에 백범이 암살당했다고 본다.”
이 소장은 “백범 김구 암살로 인해 한독당은 사실상 와해했다”고 했다. 이후에는 독립운동가들이 주축이 됐던 한국독립당의 맥이 끊긴 채 한국의 정당사가 흘러갔다고 했다. “한민당은 당초에 내각책임제를 실시해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내세우고, 총리는 한민당이 차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승만이 거부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야당의 길을 걷게 됐다. 한민당이 처음부터 야당을 자처한 것은 아니었다.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따로 자유당을 만들었다.”

Q : 4ㆍ19로 인해 결국 자유당은 해체됐다. 이후 민주당의 장면 내각이 들어섰다. 어떤 내각이었나.

A : “다 한민당 계열이었다. 친일 세력이 주축이었다. 그러다 5ㆍ16 군사쿠데타로 민주당이 다시 야당이 됐다. 박정희가 만든 공화당이 여당이 되었다. 박정희 정권 때 야당 정치인 상당수가 지역의 부자들인 뿌리가 여기에 있다. 당시 민주당 안에는 구파와 신파가 있었다.”

Q : 민주당 안의 구파와 신파는 누구였나.

A : “5ㆍ16 쿠데타 났을 때 정부는 의원내각제였다. 대통령은 윤보선이지만, 총리는 장면이었다. 의원내각제는 총리에게 실권이 있었다. 김영삼은 해방 후에 수도경찰청장을 지낸 장택상의 비서였다. 윤보선 계열의 구파다. 반면 김대중은 장면 계열이었다. 장면이 가톨릭 신자였고, 김대중도 가톨릭을 믿었다. 장면 계열이 신파였다. 양 김씨가 끝없이 합쳤다, 헤어졌다 한 게 민주당 내 신파와 구파의 싸움이었다. 1987년에는 이로 인해 야권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가 무산됐다.”

Q : 역사적으로 따져볼 때 야당인 국민의힘 뿌리는 어디인가.

A : “공화당은 박정희 대통령이 피격된 10ㆍ26 사건으로 거의 해체됐다. 공화당의 한 줄기가 김종필로 이어졌다. 김영삼 계열과 민정당을 계승한 노태우 계열, 김종필 공화당 계열이 3당 합당해 민주자유당(민자당)이 됐다. 이게 국민의힘의 뿌리다. 민자당을 독재 계열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토착 왜구’라며 친일 세력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약하다. 더구나 한민당이 뿌리인 더불어민주당이 그런 비판을 할 수 있는 역사적 정당성은 없다.”

Q : 민주당 정치인들이 “국립 현충원에서 친일파 묘를 파내야 한다”고 주장한 적도 있다.

A : “그것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자신의 족보를 정확하게 모르니까 하는 말이다. 그런 주장에 앞서 친일 역사학자들이 지배하는 역사 인식을 바로 잡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지금 정권에서는 식민사학이 오히려 제 세상 만난 듯이 기세등등하지 않나. 여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과가 우선이다.”


이 소장은 “백범 김구나 희산 김승학 등 상해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관과 정치관은 해방 공간의 한독당에 있었다. 그 맥이 끊어졌다는 게 너무 아쉽다”며 “그들의 역사관에는 고조선을 비롯해 고대사부터 독립운동사까지 쭉 내려오는 우리의 고유한 민족정신이 살아 있다. 이제라도 그런 정신을 계승하는 정치 세력이 나와서 한국 정치판의 지형을 바꾸어 놓으면 좋겠다. 그게 현재의 비정상적인 정치 지형을 깨뜨리는 거의 유일한 방안이지 않겠나. 지금은 여야가 모두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Q : 그럼 이상적인 정치 지형은 어떤 건가.

A :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독당의 정신을 계승하는 보수 정당과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진보 정당이 나와서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 프랑스처럼 말이다. 우리로 치면 프랑스는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모두 나치에 저항해 싸웠다. 해방 후 우파는 드골의 인민연합이 되고, 좌파는 사회당이 됐다. 둘 다 나치에 저항해 싸웠기에, 둘 사이에는 ‘톨레랑스’가 흐른다. 대화와 관용이 통한다. 우리는 광복 후 항일 독립운동을 했던 좌우 세력이 미군정과 한국전쟁, 남북분단 등을 거치며 모두 제거되면서 이런 정치지형이 구축되지 못했다.”
이 소장은 “정당이 뚜렷한 자기 정체성, 자기 이념을 가지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Q : 그게 왜 중요한가.

A : “우리나라 정치인의 도덕성을 보면 안다. 대부분 ‘말 따로 행동 따로’다. 본질적으로 자기네 당의 이념이 뚜렷하지 않아서다. 여든 야든 마찬가지다. 정당인은 자기 정당의 이념을 충실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 자체가 도덕성이어야 한다. 그래야 ‘내로남불’ ‘위선’이란 이야기가 아예 안 나온다.”
글=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 역사학자 이덕일은

「 1961년생. 충남 아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생 때 함석헌의 자서전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에 감명을 받아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숭실대 사학과에 들어가 역사학으로 석ㆍ박사를 했다.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조선왕조실록』『이덕일의 한국통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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