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칼럼
[k- route를 가다] “고인돌 루트(dolmen Route)”의 실체 9(인더스 인도문명편)
허황옥의 고향 땅, 4대 문명권 인더스문명 인도로 가다
어서와. 고인돌은 처음이지?
세계고인돌연구학회 (World Dolmen Reserch Academy) 창립
이매림 (사) 대한사랑 수석본부장 /미래로 가는 바른역사협의회 사무총장
허황옥의 고향 땅, 4대 문명권 인더스문명 인도로 가다
- 두 번째라면 서러워할 인도의 고인돌 문명-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전시회로 말들이 많다. 국가의 수장이 가야사 복원을 희망했지만 정작 가야 전시회는 가야를 부정하는 전시회가 되어 버렸다. 원래 전시회의 첫 테마는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인연으로 시작되었는데 일명 주류학자 중 일부가 카르텔을 이용하여 국립중앙박물관 가야전시회를 맹공하였다. 급기야 허황후, 파사사탑이 유사사학으로 몰려 신화로 분류되어 재설치되고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설이 정사인 것처럼 그대로 전시회에 테마로 자리 잡았다. 그 중 K대학의 교수는 “당시 허황옥과 파사사탑이 인도에서 올 수 없었다. 거짓말 신화이다. 김수로왕릉도 가짜다.”라는 박물관 강좌를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가야 기획전시 파사석탑 부분에서 다음으로 이동할때 바닥에 "신화에서 역사로"라고 적어놓았다. (사진=한문화타임즈) |
하지만 여러 분들은 그동안 게재된 고인돌루트를 통해 그것이 ‘진짜 거짓말’임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진짜 실증사학 가면을 눌러 쓴 유사사이비 학자임을 인식했을 것이다. 이번 인더스 문명 고인돌 루트는 앞으로 전개될 수메르문명권과 더불어 세계 고인돌 연구가들에겐 파천황적인 충격을 줄 것이다.
인류 4대문명 중 하나인 인더스문명은 드라비다족(Dravida族)이 건설한 문화로 평가 받고 있다. 아리안족의 이동과 함께 드라비다족은 인도의 남부로 이동하게 되며 아리안족은 인도대륙의 문화정복과 예속화하면서 베다를 중심으로 한 문화권 속에 ‘카스트’라는 지배구조의 사회제도를 만들어 시행한다. 즉 사회적 신분을 종교적으로 강하게 고정시켜 놓음으로써, 지배계급의 통치를 강화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했다.
△ 인류 4 대문명도 (지도: 위키백과 )
영국은 인도를 식민통치하면서 강압보다는 카스트제도를 적절히 활용하여 무난히 인도를 장악한다. 카스트 제도를 합법화한 적이 없고 1947년에 카스트 제도에 의한 사회적 차별을 법적으로 금하였으나 오랜 기간 고정화된 사회 제도였다 보니 제도 자체는 폐지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인도와 한국의 거리가 가까워진 이유 중에 하나가 서두에 언급한 가야사의 시작인 김수로왕의 배필, 허황옥이 인도의 아유타국 출신이라는 것이다. 현재는 이에 대해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인도- 중국- 가야로 이동하는 역사경로에 대한 발표도 있었다.
△ 허황옥의 이동경로, 김병모 저 『허황옥 루트,인도에서 가야까지』 (그래픽 : 환단고기 북콘서트)
가락국기를 읽어보면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배필로 점 찍어 중매를 서신 분은 “황천상제”인 ‘하느님’으로 기록되어 있다. 인류 왕조 역사에 ‘하느님’이 중매를 선 경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숭선전지(崇善殿誌) 1권 가락국기(駕洛國記)
오른쪽 편을 읽어보면 ‘황천상제’께서 허황옥 모후의 꿈에 나타나 딸의 신랑감을 ‘딱’ 찍어주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광개토호태왕비문에서 장수왕은 ‘고주몽 성제’는 북부여에서 나신 분으로 ‘천제지자(天帝之子 하느님의 아들)’라 밝혔고 비문 속에는 고주몽이 엄리대수를 건널 때 수신(水神)에게 ‘我是皇天之子’(나는 황천상제님의 아들이다)라고 부르짖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고주몽 성제의 4대조 할아버지이며 실제 고구려 1대 태조로 받든 ‘북부여 건국자 해모수’도 자신을 ‘천제지자(天帝之子)’라고 칭했다고 삼국사기에는 기록하고 있다.
출처 : 환단고기 북콘서트 가야편 |
일부 학자들에 의해 광개토태왕비문 한자에 방점을 잘 못 찍어 번역하는 바람에 천제지자 = 해모수로 번역하여 뒤에 연결된 고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을 졸지에 증조시할아버지와 부부로 만들어서 지금까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한국사의 현실을 보여주는 진짜 단군 할아버지역사 이래로 볼 수 없는 역사 블랙코미디의 진수이다.
대한제국을 건국하며 고종황제는 황천상제께 천제를 지냈다. 황궁우에 봉안되어있는 황천상제 위패 (출처 : 궁궐산책) |
그 ‘황천(상제)’께서 다시 등장하는 장면이 바로 김수로왕과 허황옥이 만나서 부부인연을 맺는 장면이다.
필자는 김수로왕과 허황옥 역사를 보면서 과연 그 시대 국제결혼이 가능했을까? 또한 서로가 금실이 너무 좋아 자식들도 많았고 또 그들은 일본열도 개척사의 주 인물이 되었다. 금실이 좋으려면 우선 말이 통해야 하는데 과연 김수로왕과 허황옥은 어떻게 의사소통 했을까? 그에 대한 의문은 그동안 산스크리트 연구와 타밀어를 연구한 민족사학자들과 최근 인도를 방문하거나 여러 국민들이 직접 인도인들과의 만남 속에서 해답이 발견하게 되었다. 해답은 당시 '서로 언어를 자유롭게 소통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다. 물론 그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되어야 하지만 고인돌 루트를 통해 어느 정도 확신을 할 것이다.
인도의 고인돌은 아직까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규모나 한국과의 관계등도 소수의 학자들이 언급했는데 일부 주류사학자들은 연구도 없이 한국과 인도의 고대문명을 연결 지으면 “환빠, 국뽕, 유사사학”이라고 공격을 한다. 오늘 실체를 보여 주고자 한다.
이제 인도와 주변국의 고인돌 루트를 찾아가 보자.
우선 인도에 존재하는 거석문화 분포를 살펴보라. 한국과 동급정도일 수도 있다. 프랑스에 거석문화인 고인돌이 많아 고인돌 종주국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와는 비교도 안 된다.
인도의 거석문화 분포(출처 : LIVE MINT)
검은 점이 거석문화이다. 고인돌과 직결되는 문화다. 이 중 일부만 살펴보고 넘어 가고자 한다. 특히 한국문화와 연결된 문화고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히레 벤칼 (Hirebenkal) 마을 언덕의 고인돌군(유투브캡처)
이 고인돌군은 코팔 지구의 간가 바티 탈룩 (Gangavati taluk)에서 10km 떨어진 히레 벤칼 (Hirebenkal) 마을 근처 바위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데 어마어마한 규모의 선사 시대 거석 정착촌이다. 인도 고고학 조사 (ASI)는 이 지역을 보호구역으로 하여 보전을 하고 있다.고인돌 모습이 어떻게 느껴지는가?
고인돌 루트는 계속하여 인도 남부까지 연결되어 있다.
인도 Karnataka 고인돌군(출처:tamilnadu- tourism)
Karnataka 고인돌군은 50여 개로 분포하고 있다. 여러 분들도 쭉 살펴 보았듯이 한국에서 따지는 북방식, 남방식구분의 의미가 없다. 남방식이 있어야 할 곳에 북방식이 있다. 같이 존재하는 곳이 많다. 북방식 고인돌이 고조선문화지역이라고 표기하는 한국 국사교과서의 현실이 안타깝다. 국민을 우물 안 개구리로 알고 국민들이 그냥 믿고 넘어갈 줄 아는 것이다.
△ 타밀나두의 고인돌군
타밀나누 지역은 100여 개의 고인돌군이 존재하고 있는 곳이다. 타밀족은 인도문명을 열었던 드라비다족의 하나이며 한국어와 흡사한 언어가 살아있는 곳이다. 고대 드라비다족의 언어가 한국어와 흡사한 것이 허황옥과 김수로왕의 백년해로의 비밀이 아니었을까?
여기서 꼭 시청해야할 타밀어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유투브 두 개를 소개한다. 제작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 인사도 전하며 다음 지역으로 이동한다. 연결된 동영상도 같이 보시면 도움이 된다.
*한국어와 똑닮은 언어가 인도에?! 김치랑 막걸리도 있다고! (인도 타밀어) - 【세계문화탐구생활_1】 대리여행자 라솔[Traveler Lasol] https://www.youtube.com/watch?v=EB-38ST4Tf0
*한국어를 쓰는 인도의 드라비다족(타밀어) Ep.2 (델리 타밀어 학교 방문기) [문화] 션월드[SEAN's World] https://www.youtube.com/watch?v=LsfQtVk7nO8
이제 인도 남서부의 케랄라 지역으로 가보자. 인도의 남서부는 이동한 드라비다족이 살고 있는 지역이라 역시 한국어와 흡사한 점이 계속 나타난다.
케랄라 고인돌(출처:www.sahapedia.org)
이 지역도 고인돌군이 형성되어 있다. 한국의 KNN 방송에 소개되었던 지역의 고인돌 영상을 자료화면으로 보여 드리고자 한다. 고인돌 문화의 핵심을 잘 정리한 방송이다.
이 지역은 치토르 (Chittoor)로 인도 Andhra Pradesh주의 Chittoor 지구에 있다. 인근의 타바남팔레(Tavanaimpalle) 마을이 있다. 이곳의 사람들은 고인돌을 자신들 ‘조상 묘’라고 소개하고 있다.
△동네 사람들의 휴식처 고인돌( 자료화면: KNN방송)
△ 에구바카나탈라 고인돌(출처:남인도 치토르지역의 지석묘조사연구 /이헌재)
이 지역의 에구바카나탈라 체르브와 사라칼루 마을의 미디말라에서 15기의 고인돌이 존재한다고 조사되었다.(자료사진)
이 지역의 사람들은 벼농사를 짓는데 벼 껍질을 벗긴 것을 ‘사알’이라고 하며 물을 부어 밥을 짓는데 그것을 ‘바압’이라고 한다. 그리고 벼 주변의 잡초를 ‘풀’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들은 고인돌에 제사를 지내는데 그 이유는 조상들의 무덤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한다.
고인돌 루트를 연재하며 한국의 현실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세계 고인돌의 대부분이 존재하고 있는 한국은 고인돌을 조상역사를 축소하는 소재로 활용하고, 정원을 만들 때 조경용 돌로 사용하고 현실을 본다면 고인돌을 조상의 무덤으로 정확히 인식하고 제사를 모시는 인도인들과 비교가 너무 된다.
△고인돌에 제사지내는 마을 어른(출처:KNN방송)
이제 인도 주변국 한 곳을 더 돌아보고 아시아 북방으로 이동하고자 한다. 인도 옆에 부탄이 있다.
*부탄(Bhutan)이라는 국명은 산스크리트어로 "티베트의 끝"이란 뜻인 "보따-안따(भोट-अन्त)"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앞의 보따(भोट)는 고대 티베트어로 티베트를 가리키던 말인 "보드(བོད་)[6]"이며, 티베트의 끝이라는 이유는 말 그대로 티베트 고원의 남쪽 끝에 있었기 때문. 부탄인들 스스로는 용의 나라라는 뜻으로 쭈위(འབྲུག་ཡུལ་)라고 부른다.(*나무위키)
용의 나라라고 한다면 용의 기원이 홍산문명 사해문화(査海文化, BCE 5600~5200) 석소룡이 아니든가?
이 나라도 틀림없이 고인돌 존재 냄새가 난다. 아니나 다를까 틀림없이 고인돌은 존재하고 있었다.
△ 부탄의 고인돌
그리고 주변국 파키스탄도 고인돌군이 존재한다고 기록은 있으나 관련 연구 자료가 공개된 것이 없이 기재를 못한다.
이렇듯 인도대륙과 주변나라에도 전 지역에 고인돌이 존재하고 있다. 인도 전역의 고인돌 자료가 확보되면 다시 보충드릴 것을 약속한다.
고대 인도문화를 열었던 드라비다족과 그 언어는 한국인들이 꼭 연구해야 할 역사의 코드다. 한국의 영성문화와 인도의 영성문화도 코드가 연결된다. 인도 남아시아편 고인돌 루트를 매듭지으며 그 옛날 허황옥 이전에 존재하였던 문화로드를 여러 분들은 확인하였을 것이다. 여기에는 언어도 같이 연결되어 있다. 이것을 ‘유사사학’이라고 공격할 것인가? 연구를 안 해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공부하는 것이 학자의 자세 아닌가?
오늘 4대 문명의 하나인 인더스 인도문화의 코드를 정리하며 다음은 극동아시아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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