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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

환단고기는 신채호다

도종환은 문체부 장관시절인 2019년 2월 21일 신채호 순국 83주기 추모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민족사관이 역사의 주류사학이 되어야 한다. 올바른 민족의식을 가진 분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기가 다 되어가는 한 장관의 발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관심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나가는 추모사려니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엄중하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이 해방후 70여년이 지나도록 주류역사학계에서 배척받고 배제되고 있다는 뜻이다현재 국사교과서에서 신채호 선생님의 한국사에 대한 견해는 단 한 줄도 배울 수 없고 그저 그는 멋진 명언을 외치는 명언가요 독립운동에 투신한 투쟁적이고 혁명적인 인물이라는 이미지로만 각인되어있다.
 
그는 역사학자다. 실증주의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기에 만주벌판을 헤집으며 우리 상고사의 흔적을 찾고 과거 사실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시도했던 노력파 천재였다. 그런 면에서 선생의 역사관은 제대로 알려져야하고 철저히 검증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역사학계는 신채호 선생이 독립운동가로만 대접받기를 바란다. 그의 역사관이 드러나지 않기를 지금도 바라고 있고 그렇게 만들고 있다. 
 
단재 신채호의 역사관은 무엇인가? 그의 역사관은 그의 역사 저작인 <조선상고사> 등의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28년 감옥에 갇힌 후에 <조선상고사>는 신문을 통해 연재되었고 해방후에 책으로 묶어져 나왔다. 단재는 자신의 역사연구를 완성하지 못하였음을 한탄하였다. 그가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조선상고사>를 미완으로 남겨놓지 않고 완성시켰을 것이다. 
 
미완성작이지만 상고시대로부터 삼국시대까지 정리가 되어있는 <조선상고사>의 내용은 환국,배달,조선으로부터 9천년 한민족의 역사를 알려주는 <환단고기>와 그 맥이 닿아있다. 지금 주류사학계는 이런 환단고기 사학, 민족사학과 신채호 선생이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그 계승관계를 끊어놓으려고 한다. 
 
『유사역사학 비판』이라는 책을 써서 민족사학을 매도하는 소설가 이문영 씨의 논리는 간단하다. 
 
①신채호와 민족사학을 단절시킨다. ②최동(투라니즘) - 문정창(친일파) - 안호상 (일민주의, 파시즘)으로 민족사학의 계보를 연결시킨다. ③ 민족사학,환단고기를 신채호 역사관의 맥이 아니라 투라니즘,친일파,파시즘,나찌즘으로 연결하여 국민들이 혐오감을 가지게 한다. 주류 강단역사학계는 뒷짐을 지면서 소설가 이문영의 논리개발에 박수를 쳐주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논리가 얼마나 허술한가는 <조선상고사>와 <환단고기>를 비교해보면 나온다. 몇 가지 핵심 논리를 비교해보자. 
 
<전후 삼한론>는 단재 선생 최고의 역사적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삼한은 한반도 남쪽의 삼한만이 아니라 그 전에 북삼한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삼한이 대륙삼한이고 이것이 후에 한반도 남쪽의 삼한(후삼한)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지금 학계가 인정하고 있는 것은 한반도 남쪽의 삼한 뿐이다. 첨예한 대척점이다.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부역한 친일학자 이병도는 <삼한문제의 신고찰 1934∼1937 >을 썼고 이후 단재의 전후삼한론(삼한이동설)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전후삼한고>는 『조선사연구초』에서 가장 야심적이며 학술적 영향도 큰 논문이었고 이는 <조선상고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삼한을 인정한 대표적인 학자는 신채호,계연수, 정인보, 안재홍, 최동,문정창 등이다. 
 
환단고기는 전후삼한과 맥락이 같은 삼한관경제가 바탕이 되어있다단군왕검은 신교의 삼신(神) 원리와 삼신의 신성 속에 깃든 광명 원리를 근본으로 해서 단군조선의 전 영토를 삼한三韓(진한 ·번한·마한)으로 나누어 다스렸다는 것이다. 단군조선 문제,기자조선 문제,한사군 문제 등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모든 문제가 풀리는 열쇠가 바로 삼한관경제다.
 
위만조선은 삼한중 번한(번조선)땅이었다. 그리고 위만정권을 치고 그땅에 한군현을 세웠다고 한다면 그땅은 번한(번조선)땅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신채호 선생의 전후삼한은 이를 밝히는 열쇠가 된다.
또한 단재 선생은 「평양패수고」를 써서 고대의 평양·패수가 오늘날의 평안도 평양·대동강이 아니라 만주 봉천성의 해성현(海城縣)과 점우락(蔪芋濼)임을 고증했다. 이는 역시 역사학계가 유사사학이라고 몰아붙이는 민족사학과 환단고기와 같은 관점이다. 
 
또한 신채호는 낙랑국과 낙랑군을 구별했다. 평양에는 최씨 낙랑국이 있었고 한나라 식민지 낙랑군은 한반도에 없었다는 주장을 폈다.  이를 환단고기에서는 번조선의 대부호 최숭이 BCE 195년 한반도 평양에 도읍하고 세운 나라가 낙랑국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낙랑국과 낙랑군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 환단고기와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역사학계는 무조건 한나라 식민지 낙랑은 평양에 있었다는 낙랑군 평양설을 맹신하고 있다. 
 
신채호 선생은 낙랑국과 낙랑군을 구분하였다.
이는 중국의 동북공정의 무혈입성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이다. 420년간 한반도 북부땅에 한나라 식민지가 있었다는 역사관이 맞다면 이는 중국의 영토침탈의 역사적 근거를 제공하는 꼴이 되고 만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했다는 말을 듣고도 한마디 비판 못했던 것이 우리 역사학계 아닌가? 우리 학계 스스로가 동북공정의 논리를 제공하고 있으니 아무말 못하는 것이 아닌가.
 
광복후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류학계와 민족사학이 학술논쟁을 하고 있는 <패수>와 <낙랑군> 문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무엇이 상고사에 있어서 쟁점이 될지를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 핵심을 물고 늘어졌다. 
 
중국의 한나라 지도 : 거의 대부분 한나라 지도는 한반도 북부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를 우리 역사학계가 뒷받침해주고 있는 형국이다.
고구려 900년설도 일치하고 있다. 단재 선생은 고구려가 700년이 아니라 900년임을 역설했다.  이는 광개토태왕비문과 환단고기를 통해서 실제로 900년임이 입증되었다. 광개토태왕비문에서는 시조추모왕출자북부여(始祖鄒牟王出自北夫)라고 되어있다. 고구려가 북부여서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광개토태왕비문과 모두루 비문 모두에 출자북부여,원출북부여라고 명기되어있다.
또한 17세손(十七世孫)이라고 비문에 기록되어있다. 고구려인이 장수태왕시절 건립한 비문이니 당연히 고구려 역사의 1차 사료로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개토태왕이 17세손(十七世孫)이라고 한점을 학계는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 800년 뒤에 나온 <삼국사기>에 따르면 1세 고주몽 이래 광개토태왕까지 13세(十三世)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 4세손 차이가 왜 나게 되었는지는 환단고기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4세(四世)는 <환단고기>를 통해서 북부여의 시기였음이 입증되었다. 바로 해모수의 아들 고진으로부터 고진의 손자 고모수에서 부터 그의 아들 고주몽까지의 4세의 시기가 환단고기를 통해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로서 고구려는 북부여 시기 200년을 포함한 900년임이 입증된 것이다. 이를 통해서 신채호 선생이 문헌과 비문 등을 통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사실에 매달렸는가를 알 수 있다.  북부여의 역사가 삭제되어있어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데에는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900년이라는 것은 놓지 않았던 단재의 치열함이 돋보였다. 
 
이외에도 <조선상고사>의 목차와 내용을 한번 보면서도 뽑을 수 있는 내용이 아래와 같다.
 
환국 국호 인정,단군 실존,단군의 아들 부루 인정, 전후삼한 삼한관경제 인정 ,마한 진한 번한 三一(천일지일태일)의 철학,위만도읍 왕검성은 개평 동북 (한서지리지 요동군 험독현),낙랑국과 낙랑군의 구분 : 남낙랑,북낙랑,고구려 900년설 인정,영류왕이 도교 수입,연개소문의 사망 연도에 관한 착오 정정,안시성주는 양만춘,양만춘의 화살 당태종 눈을 맞춘 사실 등 단군조선에서부터 고구려까지의 내용이 모두 <환단고기>의 내용과 부합하고 있지 현재 강단주류사학의 역사관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은 환단고기 역사관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환단고기>는 신채호 선생의 바른 역사에 대한 피나는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정사서다. 당대에 신채호 선생이 <환단고기>를 보았다면 기뻐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시절인 2017년 6월  14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환단고기>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했다”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 새삼 화제가 되었다. 후보자는 이전에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의원으로서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독도 침탈에 대항하여 바른 역사를 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도종환 당시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여야가 따로 없이 뭉친 것은 동북아특위뿐이었다는 얘기도 들릴 정도로 역사왜곡을 바로잡는데 열심히 활동했다. 이를 지금의 역사학계는 곱게 보지 않았기에 <환단고기>를 빙자하여 도종환 후보자에게 유사역사 추종자,사이비 프레임을 씌우려고 한 것이었다. 이런 학계의 사전 압력때문이었는지 도종환은 문체부 장관이 되고나서 바른 역사 찾는 데는 동북아 특위때보다도 오히려 한 일이 없었다.
 
이와 똑같은 일이 2020년 국회의원 선거 정국에서 벌어졌다. 도종환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시 '<환단고기>를 읽어보지 않았다'라고 발언한 걸 두고 2017년 당시  "<환단고기>를 '아직도' 안 읽을 정도로 게으르고 무지한 사람이 이다지도 많단 말인가"라고 비판했던 이정희 현 가자!평화인권당' 공동대표가 똑같은 프레임에 씌워져 궁지로 몰린 것이다.  
 
이정희 씨가 글을 쓴 2017년, 그 시기는 바로 강단주류사학이 젊은 역사학도를 그들의 대리인으로 내세워서 환단고기와 민족사학을  '유사역사학,사이비역사학'이라는 말들어내어 일제식민사학을 극복하자는 신채호사학, 민족사학을 파시즘으로 몰아붙이던 때였다. 필자는 그당시 이정희 씨의 전체 글을 읽고 통쾌하고 사이다 같은 일침을 날리는 글로 보았다. 
 
단군신화,한사군한반도설,임나일본부설,삼국사기,삼국유사 불신론 등 일제 식민사학의 프레임으로 짜여져 우리 역사를 반만년도 아닌 2천 몇 백년으로 보는 지금의 주류 역사학계의 역사관을 따르면 정사가 되고 단재 신채호 선생이 주장한 환국실존, 단군실존, 전후삼한론,한사군요서요동설,고구려 900년설을 주장하면 유사사이비역사인가? 독립운동가이자 이와 같은 사관을 견지하며 우리 역사를 지켜왔던 신채호,계연수,박은식,이상룡,신규식,조소앙,안창호 선생이 지하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 아닌가?
 
환단고기는 독립운동가 운초 계연수 선생이 그들의 동지인 독립운동가 홍범도,오동진 장군의 자금을 받아서 독립운동가 이기 선생의 감수를 받아 1911년 30권을 발간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였던 이유립 선생이 해방후 남쪽으로 내려와 자리잡음녀서 1979년 이세상에 드러난 역사서다. 신채호 선생이 그토록 바래왔던 역사의 진실이 신채호 선생이 밝힌 그대로 들어가 있는 정통 역사서다. 
 
계연수 선생 순국 100주년, 봉오동,청산리 대첩 100주년을 맞은 2020년 , 코로나 병란으로 전쟁을 치루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은 또 다른 역사전쟁을 치루고 있다. 
 
1920년 8월 환단고기를 편저한 운초 계연수 선생은 일제 밀정에 잡혀 사지가 절단되어 압록강에 버려졌다. 100년이 지난 지금 언론들에 의해서 철저히 난도질당하고 있는 환단고기를 목도하고 있다.  역사광복 전쟁에서 승리하여 계연수,홍범도,오동진,신채호,박은식 선생이 저승에서도 활짝 웃을 수 있는 그날을 위해 모두가 나서야 할 때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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