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뉴스
일본 극우파 선전장이 된 국립박물관의 가야전시
글 : 이덕일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
▶가야본성-칼과 현
엊그제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가야본성-칼과 현’이라는 가야전시회를 봤습니다. 하도 화가 나서 중간에 뛰쳐나왔다는 회고담이 공감이 가더군요. 유물을 훌륭했습니다. ‘신비의 왕국 가야, 철의 왕국 가야’라는 수식어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유물에 대한 해설과 연표, 지도 등은 황국사관을 추종하는 일본 극우파가 만들었다고 하면 명실이 상부했습니다. 가야에 ‘대사, 기문, 사타, 상다리’ 등 일본 극우파들이 가야에 설치한 야마토왜의 식민지라고 그려놓은 지도가 벽면을 가득 뒤덮고 있습니다.
▶조선과 한겨레의 연합전선
2019년 12월 3일부터 2020년 3월1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회가 시작되자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합동으로 공격합니다. 그 결과 전시유물이 교체되는 초유의 참사까지 발생합니다. 조선과 한겨레가 가야를 야마토왜의 식민지로 전락시킨 연표와 지도 등에 분노해서 공동으로 공격했다면 일제강점기의 신간회처럼 애국애족적인 좌우합작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조선일보 허윤희 기자가 12월 6일 「문 코드 맞추려, 검증 안된 지역 유물도 ’가야‘ 라고 비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틀 후 한겨레 노형석 기자가 「검증 안된 유물까지 ’묻지마 전시‘...관객 우롱한 가야전」이라고 맞장구칩니다. ’검증 안된‘이란 제목까지 똑 같죠. 두 기사를 서로 바꾸어 조선 기사는 한겨레에, 한겨레 기사는 조선에 실어도 좋을 정도로 같은 내용입니다.
▶파사석탑과 물방울 토기
두 기자가 문제 삼는 것은 흙방울 토기와 파사석탑을 첫머리에 전시했다는 것입니다. 한겨레 노형석은 “전시 들머리는 상식을 지닌 학자라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얼개를 보여준다.”라고 분노합니다. 이 문장은 “(일본 극우파 역사학이 진리라는)상식을 지닌 학자라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이라고 쓰면 맞는 말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검증’이란 일본극우파 역사관의 검증을 뜻합니다. 고령 지산동에서 출토된 흙방울 토기는 표면에 가야 건국사화에 나오는 “거북아, 거북아…”라는 ‘구지가’를 연상시키는 거북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파사석탑은 『삼국유사』 파사석탑 조에서 서기 48년 허황후가 서역의 아유타국에서 가져왔다고 쓰고 있는 유물이죠. 일반 국민들은 조선, 한겨레 두 기자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이 두 유물에 왜 격분하는지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두 유물이 가야가 서기 1세기에 건국되었다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내용을 사실이라고 말해주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또 2부의 ’화합‘이란 주제의 전시가 가야를 동서화합의 산물로 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추종한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가야는 3세기에 건국되었나?
『일본고대사연구사전(도쿄 동경당출판)』은 “가야는 3세기에 변한제국의 후계세력이 한국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운운합니다. 가야는 3세기에 건국되었다고 우기는 것이죠. 그러나 가야가 서기 1세기에 건국되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과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모두 건무 18년(서기 42)에 건국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탈해 이사금 21년(서기 77)조는 신라와 가야가 전쟁했다고 말하고 있고, 고고학적으로는 서기 1세기 때 이미 신라토기와는 다른 가야토기가 출토되고 있고, 창원시 성산유적에서 서기 전후 시기의 판모양 철제품 등이 출토된 것을 비롯해서 1세기에 가야가 있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치죠.
▶국내 석재가 아닌 파사석탑
『삼국유사』 「파사석탑」조는 “시조 수로왕의 비인 허황후 황옥이 건무 24년(서기 48) 서역의 아유타국에서 싣고 온 것……아름답고 무르니 우리나라 돌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 고려대 산학협력단에서 파사석탑의 재질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돌이 아니라고 확인했습니다. 일연이 8백 여년 전에 쓴 내용이 맞다는 뜻입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은 김유신의 12세 선조가 김수로왕이라고 말하는데, 파사석탑은 김수로왕과 허황후가 서기 1세기에 혼인했음을 말해주는 유물입니다.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장남은 김해 김씨가 되고, 차남은 김해 허씨가 되어 현재 700만 가락종친들의 모체를 이룹니다. 그러나 3세기에 가야가 건국했다면 700만 가락종친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시조로 기리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족보가 가짜가 되는 것이죠.
▶전시물을 바꾼 중앙박물관
한겨레와 조선의 연타에 그로기가 된 국립중앙박물관은 흙방울 유물은 감춰버리고, 파사석탑에는 ‘신화’라는 딱지를 붙였습니다. 조선일보는 12월 8일 “대통령이 가야사 입 떼자 하이에나처럼 덤벼들었다”는 경북대 명예교수 주보돈의 인터뷰를 게재합니다. 인터뷰에서 주보돈은 2017년 10월 국회에서 열린 가야사 학술대회를 정치적 쇼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술회의에서 자신이 종합토론의 좌장을 맡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워서 침뱉기라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임나일본부설 버젓이 게재
전시실 벽에 붙여 놓은 연표를 보면 국립박물관이 조선총독부 소속인지 대한민국 정부 소속인지 헷갈립니다. 연표에 “369년 가야 7국(비사벌,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백제·왜 연합군의 공격을 받음(서기)”이라고 써 놨습니다. 서기란 『일본서기』를 뜻하는데 일반국민들은 알지 못하게 ‘일본’자는 빼고 ‘서기’라고만 쓴 것입니다. 아비를 아비라고 부르지 못하는 슬픈 홍길동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일본 극우파 역사관을 전파하기 위해 온갖 묘수를 짜내는 국립중앙박물관과 남한 강단 식민사학과 언론 카르텔의 노력이 눈물겹습니다. 이 369년의 『일본서기』 기사가 악명 높은 임나일본부설을 핵심 근거입니다.
「탁순에 집결해서 신라를 공격해서 깨트리고, 이로 인해 비자발,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7국을 평정했다(『일본서기』 신공(神功) 49년)」
▶주갑제로 연대 조작
신공왕후 49년은 서기 249년인데, 일본극우파들과 남한의 강단 식민사학자들은 두 갑자 120년을 끌어올려 369년의 일이라고 우깁니다. 369년에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서기』의 이 구절이 메이지 시대 일제가 한국을 점령해야 한다는 논리로 삼았던 정한론의 핵심구절입니다. 한겨레, 조선의 보도 어디에도 이런 연표를 비판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있을 리가 없죠. 일본의 『일본고대사대사전(대화서방)』은 “『일본서기』는 임나를 조선반도 남부에 있었던 천황의 직할지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립박물관의 ‘가야본성’ 전시에 의해서 가야는 졸지에 일본천황의 직할지로 변했습니다. 그것도 대한민국 국민 세금으로. 더구나 이 전시는 7월부터 일본으로 옮겨간답니다. 일본 극우파들이 “드디어 한국을 역사적으로 다시 점령했다!”라면서 히레사케를 들며 축배 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청와대 청원’과 ‘이덕일 역사tv’
박물관의 연표에는 “512년 임나 4현 백제에 상실(서기). 541년 아라국, 임나부흥회의 주도(서기)” 등 일본 극우파들의 성서인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일본극우파들의 돈으로 일본 유학하고 돌아온 외형은 한국인인 토왜 교수들에 의해서 고구려·백제·신라는 모두 야마토왜의 식민지였다는 『일본서기』가 버젓이 국립중앙박물관을 점령했습니다.
369년에 야마토왜가 가야를 점령한 일 따위는 있지 않았습니다. 『일본서기』의 남가라가 금관가야라는 것인데, 이때 금관가야가 야마토왜에 점령당했다면 가야 왕통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금관가야의 5대 이시품왕이 346~407년까지 왕위에 있다가 아들 좌지왕(재위 407~421)에게 물려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야본성’의 연표에는 이시품왕 이후의 가야 왕계를 몽땅 빼먹었습니다. 야마토왜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무슨 가야왕이냐는 속셈이죠.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습니다. “임나일본부설 옹호하는 국립중앙박물관 가야전시 전면재검토하라”는 청원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저도 ‘이덕일의 역사tv’를 막 개국했습니다. 100여년 전에 우리 선조들이 바보라서 나라를 빼앗긴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팔아먹는 자는 나라를 팔아먹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