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과 가림토
박덕규 대한사랑 기자
국보 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서 훈민정음 창제의 비밀을 풀어보도록 한다.
들어가며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문자가 있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뜻[情]을 통하게 하고, 삼재三才의 도道를 실었으므로 후세에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 <정인지 서序>)
천지자연의 소리를 담는 글이 한글이다. 정인지는 『훈민정음 해례』 서문에서 “글자로써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고, 글자로써 천지자연과 사람의 이치[道]를 담았다.”고 말한다. 그의 아름다운 서序를 읽으면서 ‘아름답다’는 말의 뜻을 생각해 본다.
『석보상절』에서 ‘아름답다’는 ‘아 답다’로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아’는 ‘나我’를 뜻하니 ‘아답다’는 ‘나답다’라는 말이다. 또한 고어에서 ‘아름답다’는 ‘알움답다’에서 나왔고, ‘알움’은 ‘스스로 속에 갖고 있는 씨앗이 싹 튼다’라는 말이다. ‘알움답다’는 진리를 찾아 수행하던 구도자들이 ‘참된 나를 발견하는 깨달음의 시초’라는 뜻으로 썼다. 결국 아름답다는 말은 내가 나답게 되는, 그래서 ‘참된 나’를 찾는다는 말이다. 아름다운 ‘나’는 글과 말로써 천지와 그 뜻을 통하고, 사람은 말과 글로써 하나가 되어 어우러진다. 훈민정음 해례를 통해서 아름다운 우리 글, 한글에 담긴 천지와 사람의 도를 찾아 떠나보자.
훈민정음의 제자원리
초성과 중성
훈민정음은 초성(자음) 17자와 중성(모음) 11자를 합해서 총 28자로 구성된 소리글자다. 해례본은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되었는데 최근에서야 훈민정음의 제자制字원리가 세상에 알려졌다. 훈민정음 해례 제자해의 첫머리는 “(훈민정음은) 천지의 도인 음양오행의 이치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천지자연이 둥글어가는 변화질서를 나타낸 음양오행에 맞춰서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초성 자음 기본자(ㄱ, ㄴ, ㅁ, ㅅ, ㅇ)는 소리를 내는 발성 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아음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뜨고, 설음 ㄴ은 혀가 위턱(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뜨고, 순음 ㅁ은 입모양을 본뜨고, 치음 ㅅ은 이빨 모양을 본뜨고, 후음 ㅇ은 목구멍 모양을 본떴다.(『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제자해制字解>)
소리를 내는 발성기관(어금니, 혀, 입술, 이, 목구멍)의 성질에 따라서 초성 기본자를 오행(목·화·토·금·수)과 사시(봄·여름·가을·겨울), 오음(궁·상·각·치·우)에 배치하고, 오행은 상생相生하는 하도河圖의 순서를 따랐다.
목구멍은 깊고 젖어 있으니, 물[水]이다. 소리는 비어 있고 통하니, 물이 투명하고 흘러 통하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겨울이 되고, 소리로는 우羽가 된다. 어금니는 어긋나고 기니, 나무[木]다. 소리는 목구멍과 비슷하나 차 있으니, 나무가 물에서 나서 형체가 있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봄이 되고, 소리로는 각角이 된다. 혀는 날카롭고 움직이니, 불[火]이다. 소리가 구르고 날리니, 불이 구르고 퍼져 휘날리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여름이 되고, 소리로는 치徴가 된다. 이는 단단하고 물건을 끊으니, 쇠[金]이다. 소리가 부스러지고 걸리니, 쇠가 부스러져 가루가 되고 단련되어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가을이 되고, 소리로는 상商이 된다. 입술은 펼쳐져 있고 합해지니, 흙[土]이다. 소리가 머금고 넓으니, 땅이 만물을 품어 넓고 큰 것과 같다. 계절로는 늦여름이 되고, 소리로는 궁宮이 된다.(『훈민정음해례』 <제자해>)
입술소리 ‘ㅁ’은 오행에서 토에 배치했는데, 소리는 모두 입술에서 나오기 때문에 무위無位로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뒤에 설명할 중성 모음에서 사람을 뜻하는 ‘ㅣ’가 무위수인 이유와 같다. 중성인 모음母音 기본자(ㆍ ㅡ ㅣ)는 각각 하늘과 땅, 사람을 본떠서 만들었다. 목구멍 속에서 혀가 오그라졌다가 열리면서 내는 소리의 깊고 얕은 순서에 따라서 천지인(ㆍ ㅡ ㅣ)으로 배열했다.
중성은 무릇 열한 글자이다. ㆍ는 혀가 오그라져 소리가 깊으니, 하늘이 자시子時에 열린 것이다. 모양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다. ㅡ는 혀가 조금 오그라져 소리가 깊지도 얕지도 않으니, 땅이 축시丑時에 열린 것이다. 모양이 평평한 것은 땅을 본뜬 것이다. ㅣ는 혀가 오그라지지 않아 소리가 얕으니, 사람이 인시寅時에 생긴 것이다. 모양이 서 있음은 사람을 본뜬 것이다. (『훈민정음해례』 <제자해>)
중성 모음 기본자(ㆍ, ㅡ ,ㅣ)를 각각 음양으로 결합해서 중성 초출자(ㅏ, ㅓ, ㅗ, ㅜ)를 만들었는데, 초성 기본자와 마찬가지로 하도의 오행상생 관계에 맞게 배열했다.
이 아래의 여덟 소리는 하나는 닫힘이며 하나는 열림이다. ㅗ는 ㆍ와 같으나 입이 오므려지고, 그 모양은 ㆍ가 ㅡ와 합해서 이룸이며,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사귄다는 뜻을 취하였다. ㅏ는 ㆍ와 같으나 입이 벌어지고, 그 모양은 ㅣ가 ㆍ와 합해서 이룸이며, 천지의 작용이 사물에서 발해 사람을 기다려서 이루어짐을 취하였다. ㅜ는 ㅡ와 같으나 입이 오므려지고, 그 모양이 ㅡ가 ㆍ와 합해서 이룸이며, 역시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사귄다는 뜻을 취하였다. ㅓ는 ㅡ와 같으나 입이 벌어지고, 그 모양은 ㆍ가 ㅣ가 합해서 이룸이며, 역시 천지의 작용이 사물에서 발해 사람을 기다려서 이루어짐을 취하였다. (『훈민정음해례』 ‘제자해’) 중성 초출자(ㅏ, ㅓ, ㅗ, ㅜ)에 사람을 형상한 ‘ㅣ’를 겸兼하면 중성 재출자(ㅛ, ㅑ, ㅠ, ㅕ)가 되는데, 여기에서 훈민정음에 담은 인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세종의 철학이 드러난다.
ㅛ, ㅑ, ㅠ, ㅕ는 ㅣ에서 일어나 사람을 겸하여 두 번째로 생긴 것이다. ㅛ는 ㅗ와 같으나 ㅣ에서 일어나고, ㅑ는 ㅏ와 같으나 ㅣ에서 일어나고, ㅠ는 ㅜ와 같으나 ㅣ에서 일어나고, ㅕ는 ㅓ와 같으나 ㅣ에서 일어난다. 움직이는 것은 하늘이요, 멈추어 있는 것은 땅이요, 움직임과 멈추어 있음을 겸한 것은 사람이다. (『훈민정음해례』 <제자해>)
하늘과 땅, 사람의 음양합덕으로 생겨난 만물은, 천지의 성품을 고루 갖추고 ‘무극의 참됨[無極之眞]과 음양오행의 정수가 모두 갖추어진 사람’에 의해서 다시 생겨난다[再生]는 것이고, 사람이 천지의 작용을 이루는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것이다.
천지의 작용이 사물에서 발해 사람을 기다려서 이루어짐을 취하였다.(取天地之用彂於事物待人而成也) (『훈민정음해례』 <제자해>)
·는 천5이고 흙을 낳는 자리이다. ㅡ는 지10이고 흙을 이루어내는 수이다. ㅣ만 홀로 자리와 수가 없는 것은, 아마 사람은 무극無極의 참됨과 음양오행의 정수精髄가 묘하게 합하고 엉기어서, 본디 자리를 정하고 수를 이루어냄으로써 논할 수 없음일 것이다. 이는 곧 중성 가운데에도 또한 스스로 음양·오행·방위의 수가 있음이다. (『훈민정음해례』 <제자해>)
사람이 천지의 뜻을 이루는 소중한 존재라는 인간관은 환인께서 전수하신 홍익인간의 이념과 「천부경」의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의 뜻과 같다. 옛조선의 삼한관경제는 하늘의 삼신三神을 본따서 땅에 삼한三韓(마한-진한-번한)을 세우고, 하늘과 땅이 사람에게 내려준 삼진三眞을 닦고 보존한 태일太一의 인간, 대한大韓 단군이 다스린 국가통치제도였다.
자방고전
글자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인데, 세종은 어떻게 혼자, 그것도 짧은 시간에 만들었을까? 천지인天地人과 사람의 발성기관을 본 따 글자를 만들었다는 해례본 설명과는 다르게 세종실록과 정인지 서문에는 “글자는 옛 글자를 모방했다[字倣古篆]”고 쓰여 있다. 세종이 모방했다는 옛글자는 무엇일까?
이 글자는 상형하여 만들었는데 글자의 모양은 고전古篆을 본떴고, 소리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음은 칠조七調에 맞으니 삼재三才의 의미와 이기理氣의 묘가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다. (『훈민정음해례』 <정인지 서>)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세종실록』「102권」 ‘세종 25년 12월 30일 경술庚戌’)
문자의 계승 과정
신지전자
우리 고유문자의 계승 과정에 대해서 이맥李陌(1455~1528)은 「태백일사太白逸史」에서 “세상에서 전하기를 신시神市 시대에 녹서鹿書가 있었고, 자부紫府 선생 때 우서雨書가 있었고, 치우蚩尤천황 때 화서花書가 있었다고 했는데.. 복희 때 용서龍書가 있었고 단군 때 신전神篆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즉, 최초의 문자인 녹서는 옛조선에 이르러서 ‘신지전자[神誌鹿圖篆字]’로 계승된 것이다.
가림토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단군왕검께서 신지臣智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셨다.”는 기록이 있다. 단군왕검 때부터 신지전자神誌篆字 또는 신지문자臣智文字를 만들어서 사용했고, 그로부터 150여 년이 지나서 3세 가륵단군 때 가림토를 만들었다.
재위 2년 경자(단기 153, BCE 2181)년, 이때 풍속이 일치하지 않고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달랐다. 비록 상형象形·표의表意 문자인 진서眞書가 있어도 열 가구 정도 모인 마을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많고, 땅이 백 리가 되는 나라에서는 서로 문자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가륵단군께서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시어 ‘정음正音 38자’를 짓게 하시니, 이것이 가림토加臨土이다. (『단군세기』 <3세 단군 가륵 조>)
신지전자는 상형·표의문자이기 때문에, 그 뜻을 분명히 하고, 소리를 바르게 표시하기 위해서 바른 소리글자[正音] 가림토를 만들었던 것이다.
훈민정음과 가림토의 제자원리 비교
「단군세기」와 「태백일사」에 채록되어 있는 가림토 38자와 훈민정음 28자를 비교하면 모양이 같은 글자는 24자인데 특히, 가림토의 앞 11자는 훈민정음의 중성 모음과 모양이 똑같고 순서만 약간 다르다.
가림토의 진위 여부와 훈민정음과의 연관성을 확인하려면, 무엇보다 가림토에 옛조선의 정신과 철학, 사유체계가 반영되어 있는지를 알아봐야 할 것이다. 먼저, 가림토에서 중성 기본자를 천인지의 순서로 배열한 것은 (천天)1수水→(인人)3목木→(지地)2화火의 하도河圖 상생의 순서를 반영했거나, 환국과 신시배달로부터 전수된 「천부경」의 ‘인중천지일’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림토의 중성 초출자는 낙서洛書의 오행상극을 역순으로 따른다.(3木→4金→2火→1水) 가림토의 초출자가 낙서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홍범구주洪範九疇가 낙서에서 나왔고, “단군(왕검) 때 책을 만들어 금 거북의 속에 감추어 바다에 띄워 보냈는데, 우임금이 낙수에서 거두었는데 이것이 낙서가 되었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낙서는 단군왕검이 처음 밝혔던 우주변화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즉, 옛조선 초기에는 낙서를 중요시했다.
훈민정음과 가림토의 중성 재출자를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훈민정음은 재출자 ‘ㅛ’를 1수水의 성수인 6수水가 아니라, 7화火로 바꿔서 위수位數를 변화시켰는데, 다른 재출자들도 모두 위수가 바뀌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이 같은 자리에 오게 되고, 이 때문에 “하도의 수리 배치에 의한 중성자 배열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훈민정음은 왜 굳이 발성에서 반대되는 모음을 한 자리에 배치한 걸까?
사람을 형상한 무위수(ㅣ)가 초출자를 만나서 1水가 7火가 되고, 2火가 6水로 변하는 것은 양의 방향으로 기울어진 지축의 음양변화를 나타낸 것으로, 하늘의 오운五運이 땅에서 육기六氣로 변화되는 것을 뜻한다. 즉, 하늘의 음양이 땅으로 오면 대화작용對化作用에 의해 다시 음양의 변화운동이 일어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가림토에도 이런 변화가 적용되어 있어서, 가림토의 재출자 ‘ㅛ’와 ‘ㅠ’의 순서가 바뀌어 있는 것이다.[‘ㅗ’(1水)→‘ㅛ’(7화), ‘ㅜ’(2火)→‘ㅠ’(6水)]
가림토 재출자의 음양변화는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에 그 이유가 나와 있다. “환인께서는 1水가 7火로 변하고, 2火가 6水로 변하는 물과 불의 순환의 운을 계승하여 오직 아버지의 도[父道]를 집행하여 천하를 한 곳에 모으시니 온 천하가 그 덕에 감화되었다.[桓仁氏 承一變位七 二變爲六之運 專用父道而注天下 天下化之]”
하늘과 땅의 뜻을 이 땅에서 처음 실현하여 인류 최초의 나라 환국桓國을 세우고 ‘오환吾桓’ 나와 너, 우리, 모든 인간이 천지의 뜻을 이루는 홍익인간, 태일의 인간이 되도록 이끌었던 환인, 아버지 문화[父德]을 상징하여 배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고유문자와 가림토의 흔적
세종의 곁에 있던 이원
조선 건국 초기, 세종의 곁에는 『단군세기』를 쓴 이암의 손자 이원(李原, 1368~ 1429년)이 있었다. 태종의 최측근 공신이었던 이원은 충녕의 세자 사빈을 거쳐서 세종 즉위년에 우의정이 되고, 1421년 좌의정으로 승진하여 세종의 곁에서 9년간 중책을 맡았다. 이때 명망이 높았던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를 세종에게 올릴 기회는 많았을 것이다. 세종이 겉으로는 사대를 표방하면서 안으로는 자주정책과 국방, 단군에 대한 제례의식 복원 등의 행보를 보인 것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또한, 태종의 스승은 『삼성기三聖紀 전하全下』의 저자 원천석이었다.5 태종은 즉위 전에 강화도 참성단 밑의 재궁터에서 천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서 한때는 그가 성리학의 화이론적 세계관과 다른 행보를 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태종은 태조 이성계의 조상을 목왕, 익왕에서 황제국 천자만 쓰는 목조, 익조 등으로 바꾸기도 하는데 이 사실을 알고 훗날 임진왜란 때 명나라 찬획주사 정응태가 외교문제화한 적도 있다.6 무엇보다도 태종이 충주사고에 보관되어있는 『신지비사』를 따로 봉하여 올리게 한 것은 『신지비사』가 단군조선 때 쓰여진 사서임을 알고 있었고, 당시까지 전해지던 고대 사서 『표훈천사表訓天詞』, 『조대기朝代記』, 『대변설大辯說』, 『삼성기三聖記』 등을 접했다는 근거이다.
가림토의 흔적
끝으로, 한가지 주목할 점은 창제 초기에 보이는 훈민정음의 글꼴은 당시 필기구였던 붓으로 쓰기에는 불편한 점(●)과 원, 선으로 이루어진 간결한 고딕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훈민정음이 모방했다는 옛 글자가 붓으로 쓴 글씨[毛筆]가 아니라, 각필角筆처럼 날카로운 뿔이나 칼, 돌, 나무 등을 사용해서 딱딱한 표면에 새기는 새김글이고 고대문자에서 따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최근, 옛조선 시대의 첨수도 화폐문자에서 그 모양이 한자漢字와 뚜렷이 구분되는 원시한글 즉 가림토 문자와 똑같은 글자들이 발견되었다. 비록 필사해서 전해지는 과정에서 그 원형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환단고기』에 남아있는 가림토는 꺾어 쓰기와 삐침이 별로 없는 새김글 형태다. 또한, 첨수도 문자에서 훈민정음의 특징인 삼분음절법에 맞는 (초·중·종성이 합자된) 글자들이 발견되었다. 가림토가 실존했고 실제 사용되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나오며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말이 있다. ‘고마’는 고어古語에서 ‘곰’, ‘검’이고, ‘땅, 대지, 신神’을 뜻한다. 따라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당신은 신입니다.’라는 말이고 ‘(은혜를 베푼) 당신을 신과 같이 거룩하고 존귀하게 생각합니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말과 글에는 그 나라의 역사와 정신, 가치가 담겨져 있다. 훈민정음은 우리의 역사가 찾아온 하늘과 땅, 사람의 이치를 담고 한국인과 한국인의 정신을 담았다. 참 고마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