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과 권력
2016.7.28 ~8.18 뉴스타파에서 4부에 걸쳐서 방영한 것을 발췌한 것입니다.
은정훈 대한사랑 기자
이병도(KBS기자): 그 정권이 어떤 훈장을 누구에게 줬는지, 이것을 보면 역대 정권이 어떤 가치관에 중점을 뒀는지 알 수 있죠. 또 누구를, 어떤 성향의 사람들을 중용 했는지를 볼 수 있지 않나.
KBS탐사보도팀 기자들은 정부를 상대로 3년간의 소송 등을 통해 대한민국 서훈기록 72만 건을 최초로 입수했다.
최문호(뉴스타파 기자) 전 KBS기자: 건국훈장의 70년사를 보면 대한민국이 독립운동과 건국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그 독립운동가들에게 건국훈장을 안 준 그 시점에 왜 친일파들에게 훈장을 많이 줬고 어느 시점에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든 일본인에게 훈장을 줬는지, 역사가 나온다는 거죠.
뉴스타파에서 현장 취재팀이 새롭게 꾸려졌다. KBS에서 훈장 취재를 맡았던 기자가 올해 2월 뉴스타파로 왔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광범위한 훈장 분석이 시작되었다. 서훈 72만 건의 상세 내역을 샅샅이 찾고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6천여 명은 새롭게 조사했다. 현장조사도 병행했다. 여러 차례 국립현충원을 찾아 한 명 한 명 묘비명을 확인하며 훈장내역을 정리했다. 지난 넉 달 동안 자료 분석과 현장취재를 통해 대한민국 서훈자 명단을 최종 확정해 나갔다. 그동안 감춰졌던 사실이 하나씩 드러났다.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 일제로부터 서훈 7등 보장을 받았던 그가 대한민국에서도 3개의 훈장을 받은 기록을 확인했다.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다. A급 친일파로 반민특위 1호 체포자인 박흥식(훈장 1회). 동족을 배반한 대가로 일제로부터 귀족작위를 받은 민영휘(훈장 1회)도 대한민국정부에서 국민훈장을 받았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취재진은 200명 넘는 친일인사들이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에서 400건 넘는 훈장을 받은 사실을 찾아냈다. 독립운동가에게 중형을 선고했던 판사도 여럿 있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보상을 하고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벌을 준다는 것은 만고의 법칙이거든요. 이것은 국가 운영의 기본 상식과 정신이 돼야 하는 겁니다. 상 받아야 할 사람에게는 벌을 주고, 벌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는 상을 준다고 하면 그런 사회가 지탱할 수는 없죠. 그런 사회에 정의나 법이, 윤리와 도덕이 어떻게 운영되겠습니까?
조국 통일에 몸을 바친 애국자들은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고, 침략자의 편에 선 친일파들은 오히려 영광을 누린 배반의 역사. 바로 대한민국 훈장의 역사가 이를 증거한다.
한상권(덕성여대 사학과 교수) : 과거에 설사 친일행적이 있다 할지라도 대한민국 정부가 자기네들의 공로를 인정했다는 얘기는 일종의 면죄부를 발급한거죠.
뉴스타파는 지난 넉 달 동안 대한민국 훈장을 받은 친일인사들의 행적을 추적했다. 그리고 그 명단 222명을 최초로 공개한다.
이정용은 해방 전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경찰이었다. 그는 2009년 친일인명사전, 친일경찰 고문에 포함된다. 악명 높은 고등계 형사 출신으로 해방직전 직책은 순사부장이었다. 고등계형사는 사상범이나 독립운동가를 체포하는게 주 업무다.
김민철(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식민지에서 독립운동하는 세력들을 탄압하는데 핵심적인 집단이 고등계 형사들입니다. 그래서 반민특위에서도 고등계형사의 경우에는 다른 보안계나 이와는 다르게 반민족행위자로 간주한 거죠.
일제 고등계 형사 출신 이정용은 해방 후에도 잘 나갔다. 경남 남해경찰서 초대 서장을 시작으로 경남 일대 경찰서장 자리를 두루 맡았다. 남해경찰서 대강당. 역대 서장 명단이 걸려있는데, 제1대 서장에 그의 이름과 사진이 있다. 이정용은 1,200명이 모두 학살당한 진주형무소 재소자 학살사건의 핵심 가해자이기도하다.
비극은 이정용의 사례가 이정용 하나로 그치지 않는 점이다. 많은 친일파가 한국 전쟁을 통해 반공 투사로 변신한다. 이 시기를 지나며 일제강점기 경찰과 군인 출신들이 무더기로 대한민국 훈장을 받게 된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체포, 고문 살해한 노덕술. 그는 일제로부터 서훈 8등 보장까지 받았다.
일제헌병으로 역시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던 신상묵도 모두 8개의 대한민국 훈장을 받는다.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 한국 전쟁. 하지만 일제에 부역한 한국인 경찰과 군인 출신들에겐 신분을 세탁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대한민국 훈장을 받은 일본제국주의 부역군인 출신은 모두 53명으로 확인되었다.
한상권(덕성여대 사학과 교수) : 자기가 볼 때는 뭐 과거에 자기가 했던 일이 독립운동가를 때려잡은 게 아니라 좌익 사범들을 때려잡았다 이런 논리를 합리화시켜 줄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됐겠죠.
대한민국 훈장을 받은 친일경찰과 군인의 상당수는 국가유공자의 대우를 받으며 국립 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 반민족진상규명으로부터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되었다.
이준식(근현대사기념관장) : 일제로부터 훈장을 받은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훈장을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사람들은 적어도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국가라면 서훈하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
뉴스타파는 민족문제 연구소와 공동으로 대한민국 전체 서훈내역 72만 건과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 명단을 하나하나 대조하며 행적을 확인했다. 그러나 1950년대 서훈자의 경우 주민번호 등 인적사항이 제대로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동명이인의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전체 서훈을 관리하는 대한민국의 정부도 기록이 없다고 했다.
결국 현장조사를 병행해야 했다. 국립 현충원을 찾아 묘비에 새겨진 친일 훈장내역을 적어 나갔다. 넉 달 동안의 현장 확인 과정을 통해 친일 인사에게 수여된 대한민국 훈장의 규모를 최초로 파악할 수 있었다.
1905년 덕수궁. 고종의 집무실이던 중명전. 이곳에서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이후 수많은 친일 단체와 통치기관이 만들어졌고, 친일파들이 득세하기 시작한다. 지금의 서울시립미술관.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재판을 받았던 경성재판소가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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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판사와 검사 출신 21명이 해방 후 대한민국 훈장을 35개를 받은 것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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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별관자리에는 조선 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이 있었다. 조선 귀족·중추원 참의 6명이 대한민국 훈장을 9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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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부였다. 이곳에서 애국부인회 등 많은 친일단체가 만들어진다. 친일단체가 간부출신 26명이 37건의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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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의회는 경성부민관이었다. 친일 행적이 펼쳐진 곳. 친일 예술인 43명이 66개의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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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 정부청사 자리엔 조선보병대가 있었다. 일제 군인 출신 53명이 180개의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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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반대편 주한 미 대사관을 지난 작은 공원 자리. 70년 전에는 경기도 경찰부가 있었다. 일제 경찰 출신 17명이 41개의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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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식민통치의 본산, 조선총독부가 있었다. 일제 경찰 출신 31명이 42개의 대한민국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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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훈·포장을 받은 친일 인사는 모두 222명, 이들은 모두 440건의 훈장과 포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여성 교육계 대상으로 그들의 인맥 관계망을 분석했다. 일제강점기의 친일 행적을 추적해 해방 이후 행적과 비교했다.
1937년 애국금차회가 만들어진다. 친일파 박흥식의 부인 등이 참여한 이 단체는 금비녀까지 바치며 일제의 침략 전쟁을 적극 지원한다. 이 친일 단체의 간사와 발기인의 고황경 등 6명(고황경, 김활란, 송금선, 이숙종, 조기홍, 서은숙)이 참여했다. 이들 6명의 관계는 또 다른 친일 단체인 부인문제연구회로 그대로 이어져 간다.
1941년 최대 친일 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이 결성되고, 7명(고황경, 김활란, 송금선, 이숙종, 배상명, 박인덕, 황신덕)이 부인대 지도위원에 참여한다. 이들은 황국신민을 강조하고, 징병을 독려하고 근로정신대로 갈 것을 추천했다.
이준식(근현대사기념관장) : 제국주의에게 식민 통치를 받았거나 아니면 점령을 당했다가 해방된 나라 가운데 민족 팔아먹은 사람들한테 훈장을 주는 사례가 그렇게 흔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대한민국은 한두 사람 준 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훈장을 줬습니다. 대한민국에 공이 있다고 훈장을 주는데 그러면 이게 모순되는 거죠. 한쪽에서는 대한민국이 세워지는 데 공이 있다고 건국 훈장을 주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친일 반민족행위를 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훈장을 주는 이런 모순된 행태가 나타나고 있는 거죠.
친일파에게 수여된 대한민국 훈장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것은 친일 행적을 감춰주는 면죄부였고, 독재 부역한 대가였다.
이준식(근현대사기념관장) : 아마도 그 자신이 과거에 했던 잘못된 일에 대한 면죄부라고 생각을 했겠죠. 본인은 반성하지도 않았는데요. 자신이 반성하지도 않는데 정부로부터,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으면 ‘아, 과거에 내가 했던 일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일이었구나, 국가가 인정하는 거구나’라고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서 만족하고 그랬겠죠.
대한민국 68년 그리고 72만 건의 서훈. 대한민국 훈장의 역사는 청산되지 않은 친일의 역사. 그리고 독재의 역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