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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강좌]

    마음 없는 물질만의 세계, 물질문명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김철호 LA, 사우스 베일로 한의대(SBU) 한의대 한얼연구소 소장

    AI와 Smart Phone이 대세인 포노 사피언스Phono sapiens 시대가 도래했다. 21세기에 「천부경」은 어떤 학문적, 실제적 의미가 있을까? 평소 생각해 온 주역의 자연철학과 「천부경」의 수리철학을 연결해서 몇 자 적어본다.

    동서양 할 것 없이 자연과학은 만물을 물질 상象으로 귀결짓는다. 이른바 기계주의 유물론(Mechanism/Materialism)이다. 유물주의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1차 성질을 지닌 물질로 환원한다. 우주는 철저히 인과율로 계산되는 수학적이고 물리적인 세계다. 이를 수리물리적 세계상(nomological world view)이라고 한다.

    TED.com강의에서 어느 젊은 학자는 과감하게 현대과학의 세 가지 큰 질문을 던진다. ‘물질은 어디서 왔는가? 살아있는 물질은 어떻게 생겼나? 똑똑한 물질이란 대체 무엇인가?’ 생명 존재도 정신세계도 물질로 환원하여 설명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경험하는 온갖 의미 형상, 감응과 감정, 이성과 영성 같은 것들은 어디서 확보할 수 있을까?

    예로부터 동아시아 세계관을 이루는 근본 전제는 천인합일天人合一, 하늘, 땅, 하늘의 덕과 땅의 기운을 받은 사람, 이렇게 셋이 가장 근본이다.(天之在我者德也, 地之在我者氣也: 『황제내경』 ‘본신本神’ 편) 하늘에서 큰 것은 해와 달이요, 땅에서 큰 것은 물과 불이다. 이는 하늘에 음과 양이 있고, 땅에도 음과 양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역』 상경上經 30괘는 건곤에서 시작하여 감리로 끝난다. 신유학新儒學의 기철학氣哲學은 무시무종無始無終하는 음양동정의 세계관이다. 소강절 선생(1011∼1077)은 음양 안에 각기 천지인이 있고, 천지인 중에 각기 음양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을 주장하는 「천부경」의 세계관은 유물론, 유심론, 물심이원론 등의 철학적 난제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보여준다. 앞서 예시한 순자의 도표에서 진화의 정점에 있는 인간은 유물론적 환원주의에 의해 삼각형의 왼쪽 빗면을 타고 물질 존재로 하강한다. 도표의 오른쪽 빗면으로 올라가는 상향식 설명으로 진화론적 창발론(evolutionary emergentism)이 세워졌다. 삼각형의 밑변에 깔려있는 물질 세계관이 현대 물질문명의 토대다. 이에 비해 『순자』와 『회남자』, 『황제내경』 그리고 신유학의 기철학에서는 생명과 정신 존재가 기화氣化 세계로 환원된다.

    대삼합육大三合六 생칠팔구生七八九

    바로 앞서 ‘천이삼天二三, 지이삼地二三, 인이삼人二三’ 구절 다음에 ‘대삼합육大三合六’이 등장한다. 해석의 여지가 허다하지만 천天의 음양, 지地 의 음양, 인人의 음양, 이른바 일월, 수화, 남녀가 합하여 여섯이 된다. 이 여섯에 의해 비로소 칠, 팔, 구라는 생명의 수, 자연의 수가 나타나게 된다. 「천부경」 81자의 한 가운데 자리한 ‘대삼합육’의 육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 인류 진화의 정점에서 자연을 되돌아보게 하는 숫자이다. 『주역』의 소성괘는 삼효로 이루어진다. 두 소성괘가 합하여 육효인 대성괘를 이룬다. 64 대성괘 384효로써 천지 사이에서 참천지 찬화육하는 인간의 전 양상이 표현된다.

    대삼합육하여 칠팔구를 생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칠팔구는 ‘생생지위역生生之謂易’으로 변화해가는 인류의 도정을 시사한다. 주어진 자연 그대로에 적응하며 살아 온 자연인의 시대를 거쳐오면서 인간은 진화하고 사회는 발전해 왔다. 자연이라는 인간 생존의 무대는 시대와 함께 변화해 왔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1861~1947)는 『자연의 개념The Concept of Nature』’이라는 책에서 자연을 인과자연causal nature, 현상자연apparent nature 두 가지로 분류했다. 필자는 여기에 인공자연artificial nature, 가상자연cyber nature 두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

    물리학에서는 인과율로 파악되는 물질자연 즉, 인과자연causal nature 만을 파악하지만, 천지를 품고 사는 인간이 창조한 세계는 현상자연 – 인공자연 – 가공자연으로 발전해왔다. 인류가 진화해 오듯이 인간 중심으로 사는 천지조화 세계도 生七하는 현상자연apparent nature, 生八하는 인공자연artificial nature, 生九하는 가공자연cyber nature으로 풍요로워진 것이다. 인간이 존재함으로 지구는 온갖 가치, 의미, 목적, 조화의 세계를 이루었다.

    자연에는 네 가지 힘이 존재한다.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전자기력, 중력이 그것이다. 인간은 물론 세포조직을 가진 모든 생물, 원자구조를 가진 모든 물질에 핵력이 존재한다. 이러한 기운을 근거로 生七하는 현상자연이 존재한다. 거기에서부터 인간의 노력이 덧붙여진 生八하는 인공자연 즉 인류문명이 세워진 것이다. 고대문명으로부터 오랜 세월을 지나 왔지만 지난 두 세기 동안 급변해 온 인공자연은 인간이 전기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기력이 없으면 지금 쓰고 있는 컴퓨터는 끝장이다.

    生九하는 가공자연이란 무엇인가? 스마트 폰을 한시도 놓지 못하고 사는 신인류, 포노 사피언스 세대가 살아가는 자기력의 세상이다. 반도체와 같은 물질로 만들어져 배터리 전기력에 의해 온갖 문자와 영상을 구현하는 스마트폰은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곳에서는 죽음이다. 그러므로 전자파 자기력으로 움직이는 게 가공자연이라 할 수 있다. 칠팔구는 육에 하나씩 더해진 수이다. 천연 그대로의 천지자연에 참여하는 인간의 노력으로 인위자연과 가상자연이 성립되어온 것이다. 인공의 노력과 가상세계의 구축은 자연적으로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운삼사運三四 성환오칠成環五七

    「천부경」의 이 대목에 대하여 탁월한 설명이 적지 않다. 사족으로 본인의 의견을 덧붙인다. 기철학의 세계관은 시공간이 먼저 있고 기가 생겨난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정기가 형성되므로 비로소 시간과 공간이 주어진다고 본다. 빅뱅 이래 시간과 공간이 확장되어 가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운삼’은 천지인이 움직이는 자연의 절률絶律이다. 과거, 현재, 미래로 흘러가는 시간의 추이다. 춘하추동이 삼 개월씩 네 번 이어져 한 해가 되는 이치다. 거시적으로나 미시적으로나 모든 생명존재에는 원형이정元亨利貞,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시간성이 내재되어 있다.

    성환오成環五와 성환칠成環七은 무엇인가? 운삼사가 시간의 절률이라면, 성환오칠은 공간의 고리와도 같다. 사방과 중앙이 오가 되고, 삼차원 육면체의 여섯 – 상하, 좌우, 전후 – 그리고 중심 한 가운데가 성환칠이다. 소립자 물리학에서는 물질원소를 이루는 6개의 쿼크가 아름답게 조화로운 춤을 추는 공간이며, 천체물리학적으로 보면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일월과 칠성七星과 맞닥뜨리는 연결고리를 뜻한다.

    지구와 태양 사이에는 108개 정도의 지구가 들어갈 수 있는 거리로 떨어져 있다. 만약 107개 정도 떨어진 거리라면 지구가 너무 뜨거워서 생명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 109개 간격이라면 너무 차가운 지구라서 생명이 없었을 것이다.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5개 행성 또한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어 온전한 태양계를 이루고 있다. 오성취합五星聚合과 오성취루五星聚婁는 아름답고 장엄한 우주 쇼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물질세계에 비해 생명세계는 철두철미 시간의 절률인 리듬과 공간의 고리가 함께 돌아가는 세상이다. 화이트헤드는 생명을 자기충족self-enjoyment, 창조성creativity, 목적aim 세 가지 요소로 정의한다. 『주역』 「계사전」에 씌어진 ‘낙천지명樂天知命’하는 생생生生의 법칙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다. 자연이든 인생이든 모든 존재는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끝도 시작도 없이 기제旣濟 에서 미제未濟로, 미제에서 기제로 끊임없이 순환 반복한다.

    「천부경」은 「삼일신고」와 함께 우리 민족 고유의 위대한 정신세계를 열어준 지침서다.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천명을 맡은 이래 반만년 역사를 써 온 한겨례의 정신세계는 어떠한가? 「천부경」과 『주역』의 생생지리生生之理가 환원주의적 유물론을 대체하는 후천개벽 세계를 고대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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