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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기사]

    [단군조선의 나노과학, 다뉴세문경] 태양을 품은 천자의 상징, 청동 거울

    오동석 인문 여행작가 (100개국 문명 탐사 가이더. EBS 테마기행 출연. 문화여행 강사)

    세계의 자랑거리 미스터리 다뉴세문경

    단군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인 청동 거울은 우리나라의 국립박물관에서 흔하게 접하는 유물이다. 그런데 청동 거울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떻게 얼굴을 볼 수 있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린 적이 있다. 표면에 새겨진 복잡한 문양 때문에 얼굴을 비춰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청동 거울을 처음 본 사람들 중에는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한 이도 있을 것이다. 무늬가 있는 면은 거울의 뒷면이고, 무늬가 없이 매끈한 면이 앞면이다.

    그리고 거울이라는 명칭을 붙여서 얼굴을 보는 용도일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초기 청동 거울은 얼굴이 비추는 용도보다 태양을 반사시키는 천자의 상징물로 사용했다. 청동 거울이라는 명칭도 후대에 만들어진 이름이고 처음엔 어떤 이름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은 우리나라 청동 거울을 대표한다. ‘다뉴’에서 ‘뉴’는 고리를 의미하고, 여러 개의 고리가 있다고 해서 다뉴이다. ‘세문’은 세밀한 무늬를 나타내며 ‘경’은 거울이다. 그래서 고리가 여러 개 달린 미세한 무늬가 새겨진 거울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고운 무늬 거울’ 또는 ‘잔무늬 거울’이라고도 한다. 청동 거울은 청동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에 걸쳐서 나타나는 유물이다. 다뉴세문경 중에서도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청동 거울이 1960년대 충남 논산육군훈련소에서 참호 작업을 하던 도중에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8개의 가지 끝에 방울이 달린 팔주령八珠鈴이라는 청동 유물도 함께 나왔다. 논산에서 출토된 다뉴세문경은 현재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발굴된 청동 거울 중에서 정교한 기법 면에서 손꼽히는 유물로 평가된다.

    청동 거울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들에서도 출토되어 왔다. 그런데 유독 우리의 다뉴세문경이 주목 받는 이유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정교하고 세밀한 금속세공 기술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최소 2,400년 전에 만들어진 다뉴세문경의 무늬는 현대의 첨단 과학기술로도 재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다. 크기는 지름이 21.2센티미터로 작은 쟁반 정도 된다. 이 작은 면적에 13,000여 개의 복잡한 선과 많은 동심원이 새겨져 있는데, 1밀리미터 폭에 머리카락 굵기 선 3개를 빼곡하게 채워 넣은 것과 같다. 그 옛날 어떻게 사람의 손으로 이토록 촘촘하게 무늬를 만들 수 있었을까? 컴퓨터로 무늬를 만들어서 레이저로 새긴다면 가능할까?

    충남 논산에서 출토된 다뉴세문경을 소장한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이 2008년에 다뉴세문경의 제조 방법을 발표했다. 입자가 가는 모래로 거푸집을 만들고 문양을 새긴 후 청동을 부어 만들었다고 한다. 박물관 측은 다뉴세문경의 앞면과 뒷면의 문양에 거푸집 모래로 추정되는 모래 알갱이를 발견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다뉴세문경이 모래 거푸집을 통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모래 거푸집 제작법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뉴세문경의 거푸집이 발굴된 적이 없기 때문에, 현재까지 제작 방법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인 이완규 씨는 2010년 활석 거푸집을 이용한 다뉴세문경 재현에 거의 성공했다. 그는 다뉴세문경이 활석 거푸집으로 만들어졌다고 추정했다. 활석은 무른 돌이라 문양을 새겨 넣기에 적합하고, 표면 질이 뛰어나고 수명이 반영구적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금속 거푸집 즉 금형과 가장 비슷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활석에 다치구(한 번에 여러 개의 원을 그릴 수 있는 컴퍼스 같은 기구)를 이용하여 다뉴세문경의 정교한 문양을 재현해 냈다.

    그런데 2,400년 전에는 확대경이 없었다. 설사 확대경이 있었다고 한들 결코 수월한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또 당시에 다치구라는 도구가 있었을지도 알 수 없다. 다치구가 있었다면 1cm 폭에 원을 그리는 바늘이 적어도 20개는 배치해야 하는데 그런 도구를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까? 이렇게 다뉴세문경의 제작 방법을 알아내려 할수록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당시 장인들의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감탄할 뿐이다. 이런 이유로 과학자 이종호 박사는 다뉴세문경을 ‘한국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고 있다. 이와 같이 정밀한 청동 거울이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것은 세계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태양·광명의 천자를 상징

    청동 거울이 발굴되는 곳은 당시 지배 계층의 우두머리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고, 오늘날에도 재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진 만큼 이 거울이 평범한 용도로 쓰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청동 거울을 만든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청동은 구리가 주원료인데, 구리는 재질이 물러서 단단하게 하기 위해 주석을 첨가하여 합금한다. 정교하고 단단한 청동기가 발달하였다는 것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 기술이 그만큼 뛰어났다는 것이고, 세력이 강한 나라였다는 반증이다.


    우리의 다뉴세문경은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65.7 : 34.3이다. 이것은 가장 강도가 높고 반사율이 가장 좋은 청동 도구를 만들 수 있는 황금 비율로, 고조선 장인들이 오랫동안 실패를 거듭한 끝에 만들어 낸 것이다. 이처럼 청동 거울은 대단히 뛰어나고 귀한 고대 하이테크 기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권력을 가진 지배층이 차지했고, 그 중에서도 최고 우두머리가 사용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도자는 청동 거울을 어떤 용도로 사용했을까?

    햇빛을 반사하는 청동 거울은 하늘 위에 떠 있는 태양을 상징한다. 지도자는 청동 거울의 뒷면에 있는 고리에 끈을 연결하여 목에 걸었다. 지도자의 가슴에서 밝은 빛을 반사하는 청동 거울은 하늘을 대신하는 통치자를 상징했다. 이미 여러 유물과 유적을 통해서 우리 민족은 태양, 광명을 숭상했음을 알 수 있다. 단군조선의 건국 이념도 ‘밝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의미의 광명이세光明理世이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문에도 고구려의 시조 주몽을 천제지자天帝之子, 일월지자日月之子라 했는데 이것은 일월광명日月光明의 아들이란 의미이다. 지도자는 자신의 가슴에서 반사되는 햇빛을 백성들에게 보여줌으로써 하늘의 대리자로서 태양과 같은 통치자의 위상을 높이려 했던 것이다. 청동 거울에 새겨진 문양만 보더라도 이미 수천 년부터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태양의 상징물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그런 상징물은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권, 고대 크레타, 에투루리아, 로마, 유럽의 여러 나라, 팔레스타인,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 멕시코 등지에서 발견된다.


    신의 대리자부터 샤먼과 무사까지

    청동 거울은 워낙 만들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최고 지도자의 전유물이었다. 태양을 중요시하던 문명권의 지도자는 가슴에 청동 거울 또는 태양을 상징하는 원판을 달았다. 잉카 문명으로 알려진 잉카의 황제들도 가슴에 태양의 상징인 청동 거울을 달았다. 잉카의 수도였던 페루 쿠스코(Cosco)에선 매년 인티라이미(Inti Raymi, 태양의 축제)를 한다. 남반구의 6월 21일이어서 우리의 동지 축제에 해당하는데 이때 잉카의 황제 복장을 한 인물은 가슴에 태양신 심벌을 달고 등장한다.

    또 몽골에서는 해마다 7월이 되면 나담(Naadam)이라는 축제가 열린다. 몽골 전역에서 열리는 전통 스포츠 축제로 활쏘기, 씨름, 말타기 등 세 가지 전통 경기가 벌어지는데 이곳에선 칭기즈칸 시절 기마병을 재현한 병사들이 가슴에 원형 금속판을 단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최근에 우리나라 역사 드라마와 외국 영화에서도 군사들의 가슴에 단 청동 거울을 볼 수 있다. 이는 청동 거울이 군인들에게도 전해져 신의 군대, 태양의 군대라는 상징으로 가슴에 그것을 매달고 벌판을 달렸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훈족, 돌궐, 몽골 등 북방 기마 민족들도 청동 거울을 가슴에 달고 대륙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려갔다.

    반짝반짝 빛나는 청동에 반사된 빛은 은에 반사된 빛보다 멀리 간다. 그래서 청동 거울은 신호를 보내는 용도와 전쟁 때 상대방을 교란시키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고구려 개마무사들이 반짝이는 찰갑으로 무장하고 청동 거울을 차고 말을 타는 것을 상상해 보자. 당시 전투를 할 때는 적군이 서쪽에 있으면 새벽에 상대보다 더 서쪽으로 이동했다가 해가 뜨는 아침이 되면 동쪽에 있는 적군을 향해 진격했다고 한다. 그러면 아침 햇살이 가슴에 있는 거울을 통해 반사되어 적군의 눈을 부시게 했다는 것이다. 거대한 빛의 전사들이 달려오는 듯한 모습에 적군은 위압감을 느꼈을 것이다



    청동 거울은 처음에는 통치자이자 제사장이 사용하였지만, 왕권과 신권이 분리되면서 종교 지도자인 샤먼(shaman)에게 전해져서 중요한 제의祭儀적 도구로 사용되었다. 동북아시아 지역의 샤먼들은 가슴에 청동 거울을 걸고 다녔다. 러시아 바이칼 인근 브리야트 공화국의 지역 박물관에 가면 청동 거울을 가슴에 달고 있는 샤먼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현재도 브리야트 샤먼들은 가슴에 청동 거울을 달고 의식을 행한다.


    우리나라의 무속인은 청동 거울을 신당神堂에 걸어 두고 굿을 할 때 사용했다. 이때 거울을 둔 곳에 신이 강림한다고 생각하였다. 뒷면에 해, 달,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는 거울도 있는데, 무당들은 이 세 가지를 천부삼인天符三印이라 하여 하늘의 징표로 삼았다. 이는 신교문화의 전통이 계승된 것이다. 천부삼인을 형상화한 도구가 각각 청동 거울, 청동 방울, 청동검이다. 현재 무속에서는 이 거울을 명두明斗라 한다. 명두에서 두斗는 북두칠성을 의미한다. 명두의 대표적인 것으로 일월명두日月明斗와 북두칠성명두北斗七星明斗가 있다.

    청동 거울 무늬와 팔주령의 상징하는 것은?

    우리의 다뉴세문경에는 유독 원과 삼각형이 많이 보인다. 아무런 의미 없이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어떤 상징일까? 다뉴세문경의 무늬가 방위, 천체의 운행, 계절을 기록한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거울 바깥쪽에 동심원이 두 개씩 짝을 지어 상하좌우로 여덟 개가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거울 중심부의 고리 달린 부분의 동심원 영역을 중앙이라는 의미로 중궁中宮(혹은 토궁土宮)이라 한다.


    중궁은 빛의 중심으로 태양 자체를 상징하며, 나머지 8개 동심원은 8개의 방향(방위)으로 뻗어나가는 빛의 자식(광명)을 의미한다. 이를 구궁팔풍 운동이라 한다. 거울에서는 가운데 큰 동그라미와 주변에 8개의 작은 동그라미를 합쳐 9개(9궁)이지만 실제로 태양을 상징하는 중궁의 빛이 8개 방향(8풍)으로 뻗어 나감을 의미한다. 방향을 8개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방식은, 우주 삼라만상의 변화를 팔괘八卦로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리하자면 다뉴세문경의 무늬는 태양 빛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한 것이 아닐까 한다. 고대인들은 태양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청동 거울은 하늘의 태양과 거기에 깃든 신을 상징하기에, 그 거울을 사용하는 사람은 태양신을 대신해서 이 땅을 다스리는 통치자다. 청동 거울의 8개의 작은 동심원이 가리키는 것은 지상의 모든 세계를 상징하는 8방위다. 그러므로 청동 거울을 소유한 사람은 태양이 비치는 모든 세상, 8방위에 있는 모든 지상세계를 다스리는 통치자를 상징했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를 보면 환웅께서 순행을 하다가 태백산 북쪽의 비서갑 경계에서 천제를 올린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환웅천황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풍백風伯(바람의 신)은 천부(천부인 혹은 천부경)를 새긴 거울을 들고 나아가며, 우사雨師(비의 신)는 무리들로 하여금 북소리에 맞추어 둥글게 춤을 추게 하고, 운사雲師(구름의 신)는 수많은 군사들로 하여금 검을 들고 늘어서서 천제를 올리는 제단을 지키게 하였다고 한다.

    환웅천황을 모신 풍백과 우사와 운사의 신하들이 각각 역할을 나눠 성대하고 엄숙한 의장 행렬을 갖췄음을 알 수 있다. 이 청동 거울 속 천부경을 통해 배달국의 통치정신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므로요컨대 고대에는 우리 겨레를 다스리는 임금께서 천제天帝(혹은 神)에게 내려 받은 정통성의 징표로써 앞세웠던 것이 바로 청동 거울인 것이다.

    충남 논산에서 다뉴세문경이 발견될 당시 팔주령이란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다. 팔주령은 여덟 개의 가지에 방울이 달린 청동기이다. 팔주령은 비슷한 시기의 주변 국가에서는 출토되지 않은 우리 민족 특유의 청동 유물이다.

    이 방울도 발견 당시 국내외 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여덟 개의 방울 안에 구슬이 들어 있는데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서 만든 다음 8개의 구슬을 넣은 것이 아니라 거푸집에서 나올 때부터 구슬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팔주령 역시 태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태양에서 8개 방향으로 빛이 갈라져 나와 각 방울에 머무는 모양인데, 이 또한 구궁팔풍 운동이다. 청동 방울은 청동 거울과 마찬가지로 반만년 전부터 이어져 온 우리 선조들의 ‘광명사상’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다뉴세문경과 팔주령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광명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세계 최고의 청동 유물이다. 많은 학자들과 기술자들이 연구하고 있으나, 아직도 많은 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언젠가 다뉴세문경의 사상적, 문화적, 기술적 배경이 만천하에 분명하게 밝혀질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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