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으로 한국사를 강탈하는 중국
권성호 대한사랑 기자
“한국의 역사는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며, 한국인은 황제헌원의 자손이다.”
이것은 한국의 후손들이 미래에 배울 역사책에 기록될 문구가 될지도 모른다. ‘한국인이 한국 역사를 배우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는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대비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일어날 사실일지 그 누가 장담하겠는가. 그 음모의 발원에 바로 동북공정이 있다.
동북공정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임말이다. 중국도 1990년대 이전까지는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로 보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소수민족들을 통합하고 그들의 독립을 막기 위해 소수 민족들의 역사를 중국 역사로 왜곡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2002년부터 시작되어 2006년까지 5년을 목표로 진행되었으나, 이에 따른 후속 연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중국은 한국사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을까?
2016년 6월 ~ 2017년 3월까지, 중국사회과학원의 기금을 받아 출간된 『동북고대민족역사편년총서』
중국에서는 단군을 신화라고 하여 부정한다. 신화는 믿을 수 없으므로 단군조선의 실체는 부정되고 기자조선이 한국 역사의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단군조선을 이은 부여 또한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더 올라가면 요하문명을 중화문명의 시발점으로 규정한다. 요하문명이 중국 문명의 시작이 되면, 요하문명에서 발원한 단군조선과 이후의 역사인 부여와 고구려 등 한민족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아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들의 연구 성과를 담은 책까지 출간하였는데, 백제까지도 중국의 역사로 규정했다. 이미 연구가 많이 집적되어서 “중국 학계는 그간 백제를 한국사 범주로 인식했지만, 백제 전기 역사는 중국사에 속한다”라고 주장했다.
중국 학계의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곳곳에서 역사 왜곡이 자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광개토대왕릉비문 왜곡이다. 중국 지린성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 안내문에는 ‘중화민족의 비석’ 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1990년 중국은 고구려 성이었던 박작성泊灼城에 만리장성과 유사한 호산장성虎山長城을 축조해 중국의 단둥시를 만리장성의 동쪽 끝으로 홍보하였고, 그 이후에는 심지어 만리장성이 헤이룽장성까지 이어졌다고도 조작하고 있다.
중국 동북공정의 핵심은 고구려사였다. 동북지역이 고구려의 역사무대와 겹치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고구려를 독립국이 아니라 중국의 지방정권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고려도 고구려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역사에서 고려 이전 역사를 제외시키는 것이다. 근거로 삼는 것은 중국 문서에 등장하는 조공과 책봉 관련 내용이다. 그러나 조공과 책봉은 당시 중국 주변 국가들이 해당 지역의 실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하나의 외교적 관례였을 뿐이지, 실제로 중국에 예속된 관계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고구려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칭제건원했다는 것은 중국에 예속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광개토대왕은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사용했고, 아들 장수왕은 ‘연가延嘉’, ‘건흥建興’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그리고 천제天祭는 황제만 올릴 수 있었는데, 고구려는 중국과 다른 전통적인 천제인 동맹東盟을 지냈다. 북위가 장수왕을 책봉한 기록이 있다. 장수왕이 붕어했을 때, 북위北魏의 효문제孝文帝가 동쪽 교외에서 애도 의식을 봉행했다는 기록이다. 그러나 휘하의 제후에게 애도 의식을 하는 황제는 없다. 고구려가 중국과 전혀 다른 나라였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그런데도 중국은 해당 영토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고, 소수민족 분리를 막고, 통일 국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견강부회하고 있을 따름이다.
중국은 고구려를 이은 대진국 역시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규정한다. 중국관영 CCTV는 2011년 11월 12일부터 12월 17일까지 매주 토요일에 6부작 다큐멘터리 ‘창바이산長白山’을 내보냈다. CCTV는 다큐멘터리의 제4부 ‘산해상망山海相望’편에서 “서기 713년 당 현종이 창바이산 아래의 진국震國에 사신을 보내 수령 대조영을 ‘좌효위원외대장군左驍衛員外大將軍 발해군왕渤海君王 영홀한주도독領忽汗州都督’으로 책봉했다”고 밝혔다. 이 장면에서 CCTV는 대조영이 당나라 사신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을 연출했다.
주지하다시피, 대진국(발해)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황제를 지칭한 천자국이었다. 3대 문왕의 부인인 효의황후 묘지와 9대 간왕의 부인 순목황후 묘지에는 왕의 부인들이 황후로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CCTV는 이 프로그램에서 백두산을, 만주족 등 중국 소수민족의 영산靈山이라고 주장하며, 한민족을 제외한 ‘중국 소수민족의 영산’으로 강조한 것이다. 권력을 무기 삼아 이런 교육이 학교에서부터 이루어지면, 후세들은 실제로 고구려와 대진국을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인식하게 된다.
한술 더 떠서 중국은 역사와 영토를 넘어 한국 고유문화까지도 중국 것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2006년 중국은 우리 한국의 풍물을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농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했다. 이어서 중국은 2011년에 ‘제3차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 등록에 대한 국무원 통지’를 통해 <아리랑>, <판소리>, <가야금예술>을 중국의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으로 선정하였다. 한술 더 떠서, 중국은 아리랑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 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맞섰기에, 아리랑이 한국의 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록이 되었지만, 하마터면 아리랑이 중국의 문화유산으로 세계에 알려질 뻔 했다. 중국의 시도가 성공했다면, 세계 사람들은 한국의 고유한 무형 문화가 중국 것이었고, 그것이 한국에 전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북공정을 장차 남북통일이나 북한 급변 사태 시, 중국이 북한 영토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이다. 본래 만주는 중국 땅이 아니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어부지리로 중국 땅이 되고 나서 중국은 만주에 한족을 엄청나게 이주시켰다. 본래 중국의 역사와 강역이 아니었으므로, 동북공정을 통해서 그 땅을 영구 지배하려는 것이다.
동북공정이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미 중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대진국(발해)과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보다 훨씬 이전부터 영토 침략에 대한 야욕이 있었다. 1960년대에 당시 중국정부는 "한국은 중국의 잃어버린 영토(失地領土)"라고 했다. 아시아 17개 지역이 원래는 중국영토였는데, 미국과 일본·영국·프랑스 등 제국주의자들이 중국에 불평등조약을 강요하여 실지失地가 되었으므로 이제 회복해야한다는 것이다. [Owen N. Denny(柳永博 譯註), 『청한론淸韓論』, 동방도서, 1989, 64쪽]
이제는 단군조선과 고구려 발해를 넘어서 백제와 신라까지도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신라까지도 빼앗겨 우리는 뿌리 잘린 역사를 배울지도 모른다. 중국은 왜곡한 역사를 바탕으로 지도까지 만들어 외국에 홍보하고 있다. 나중에 역사전쟁이 일어나면 우리 한국이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 우리 사학계는 식민사관의 틀에 갇혀서 스스로 단군조선의 강역과 역년을 축소하고, 한사군의 위치를 국내로 받아들이며, 고대사를 부정하고 외국에도 그것을 자발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이런 역사왜곡 행위에 분노하면 ‘환빠’와 ‘국뽕’이라고 몰아붙이고, 유사역사학이라고 비난해버린다. 그들이 한국인인지 중국대변인인지 분간이 안 된다. 없는 한국사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왜 있는 역사도 축소하지 못해 안달인지 이해할 수 없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유대인은 구약이라는 그들의 역사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옛 땅을 찾았지만, 고대사를 중국에게 빼앗기고 있는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수많은 북방 유목민족이 중국을 지배했지만 중국 문화에 동화되고, 시간이 지나며 언어도 잃고 역사도 잃어버리면서 민족 자체가 사라진 경우가 많다. 역사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유대인은 세계를 유랑하며 피가 많이 섞였지만 역사가 있어서 지금 저렇게 뭉쳐서 힘을 발휘한다.
‘한 나라의 운명은 역사와 함께 한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중국에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분노하고 각성하며 행동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