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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특강]

    다시개벽하는 역사 동학혁명

    지구촌에 벌어지고 있는 팬데믹 상황은 동학의 ‘괴질 운수와 다시 개벽’에 관심을 갖게 한다. 진정 동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대한사랑 손성일

    왜 동학을 알아야 하는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어렸을 때 불렀던 ‘새야 새야 파랑새야’라는 민요를 누구나 알고 있다. 이 노래가 동학과 관련된다는 것도 한국인이라면 다 알 것이다. 하지만 “동학이 전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제대로 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동학이 단순히 사회혁명이나 종교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우주의 새 시대, 미래 인류 생활문화로서의 대도와 개벽을 전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근대 역사에서 동학은 어떤 위치에 있을까? 이제 단순히 종교를 넘어서 인류 정신사를 부활시키고 문명을 완성시키는 신교神敎의 맥이며 통일문화의 핵심인 동학東學을 알아야 할 시대가 왔다. 그것은 생존을 도모하며, 개벽을 넘어 열릴 미래 문명에 대한 비전과 각성이 요청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가을부터 현재(10월 27일)까지 코로나19 확진자가 세계적으로 4천3백만 명을 넘어섰다. 세계의 관심이 코로나19라는 병란 사태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하는 데 집중되는 가운데, 질병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더 큰 병란이 올 것이라 보고 있다. 권준욱 질병관리 방역본부장은 이미 10년 전부터 “앞으로 훨씬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전염병이 닥쳐올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앞으로 한두 개가 아닐 전염병들을 괴질1, 괴질2…로 이름 지을 수도 없고.”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 2000년 새 세기를 맞아 지구촌 인류의 생존에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전쟁이나 테러보다도 자연재해와 질병대란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일부 미래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지금 지구촌 차원에서 전개되는 질병대란은 인종, 혈통, 나라, 국경과 전혀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다. 작금의 사태를 이해하고 앞으로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치유문화를 열어가야 할 것인지 성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역사를 완전히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

    빅히스토리 시대(Big History age)의 새로운 눈

    지금의 역사는 단순히 한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가나 역사가가 바라보는 관점을 탈피해야 한다. 구사학(실증사학)과 신사학(새로운 주관적 해석)으로 전개되어 온 학문을 넘어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우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근래에 대두되고 있다. 그것은 서구에서 말하는 빅히스토리Big History 즉 거대사 연구이다. 빅히스토리 연구자들은 우주 역사 차원에서 인간 역사를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Big History는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상관없이 학문간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문제를 탐구하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발견하려는 연구자들이, 우주가 시작된 이후 138억 년간의 모든 역사를 거시적으로 바라본다. 한마디로 인간만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시대 이전에 펼쳐진 이 땅 위의 모든 역사와 더 나아가 우주질서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역사를 탐구하려는 것이다.


    서양에서 연구되는 빅히스토리Big history 역사관은 아직 완전히 정립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주변화의 질서까지는 다루지 않더라도, 지구 탄생 이후에 인간 역사가 있기까지의 모든 역사를 탐구하고 조망하려는 새로운 학문이요 세계관이다.


    동양의 원회운세 우주관

    동양에서는 이미 800년 전 중국 송나라 때 소강절昭康節 선생이 쓴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서 흘러가는 시간의 단위를 원회운세元會運世로 설명했다. 시간의 주기라 할 수 있는 원회운세에서 일원수元數 즉 129,600수는 곧 시간의 주기에 해당한다. 현대과학에서도 약 13만 년을 주기로 빙하기가 왔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1988년에 일본 NHK에서 방영한 ‘지구 대기행’ 프로그램에서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타원형 궤도로 돌다가 원형에 가깝게 변함에 따른 시간 질서 주기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설명했다. 동양에서는 ‘일음일양’으로 변화하는 것을, 도道이며 자연의 질서라 본다. 그래서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 했다.

    이처럼 음운 동에서 양 운동으로, 양 운동에서 음 운동으로 변화하는 것을 도라 하는데 이것을 다른 말로 ‘개벽’이라 할 수 있다. 하루에 새벽이 새롭게 열리는 것도 개벽이요, 묵은해가 가고 새로운 한해가 열리는 것도 개벽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주년宇宙年을 설명할 때 우주의 봄·여름 세상이 끝나고 가을·겨울 세상 즉 후천이 열리는 것을 후천개벽이라 한다.


    초연결 세계의 빅데이터

    지난 한 세기 전에, 근대 역사의 기점이 된다고 할 수 있는 동학東學은 동양의 우주관을 수용하면서도 서양의 거시적 세계관을 통합하여 새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동학은 ‘동방의 참된 가르침’이다. 동학에서는 우리가 새로운 통일문명의 우주 역사 시대를 맞고 있다고 본다.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 선생이 경신년(1860)에 하늘님이신 상제님으로부터 받은 ‘무극대도’는 가장 크고 위대한 가르침이다. 동학에 따르면 그동안 인류가 겪은 전쟁과 종교 갈등과 이념 싸움을 극복하고 통일문화를 여는 무극대운無極大運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가르침으로 세계의 모든 문명이 진정으로 소통하고 통합하는 시대를 열 수 있다.



    4차산업 혁명이란 무엇인가?

    최근 세계 지식인들은, 산업사회가 정보사회를 향하는 중대한 정보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초연결 사회, 빅데이터 시대를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세계는 4차산업 즉 3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하여 “초연결성, 초지능화의 특성을 가지는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등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이 상호 연결되는 세상으로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보다 지능화된 사회로 향해 가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은 2016년 1월 4차 산업혁명을 화두로 던지면서, 21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었지만 한편으로 500만 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도대체 기술발달로 일자리가 감소한다면 앞으로 세계의 경제는 어떤 방향으로 간다는 것인가? 인류 역사는 그동안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를 함께 발달시켜 왔다. 그런데 물질문화가 정신문화를 넘어서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무극대운無極大運이란 인류 역사에서 선천 5만 년이 끝나고 동서 통일문화로 열리는 후천 5만 년의 대운을 말한다.

    무극대운으로 열리는 동서 통일문화

    동학東學에서 이미 160년 전에 인류 미래를 열 새 이념인 무극대도를 말했다. 최제우 대신사가 자신이 지은 가사에서 ‘무극대도 닦아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하여 앞으로 지구촌 동서 통일문화가 열리면서 그 새 문화를 이끌어 갈 주인공이 동방 땅 조선에서 나오게 된다.


    몰락한 양반의 집안에 서자로 태어난 최수운 선생은 갑자년인 1864년까지의 짧은 생애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개벽을 강조했다. 원래 개벽이란 말은 주역에서 유래했는데, 수운 선생은 ‘다시 개벽한다’고 말한 것이다. 수운 선생은 20세를 전후해서 여러 곳을 떠돌며 세태 변화와 인심 풍속을 살폈다. 잦은 민란과 자연재해, 가뭄과 흉년, 횡포한 관리들의 가렴주구 등으로 백성과 민중의 생활은 피폐해 있었다. 민중과 지식인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에 기대야 할지 모르고 이리저리 헤매었다. 십승지十勝地라는 이상향을 찾아 나선 선비가 있고, 영부靈符와 선약仙藥을 찾는 사람도 있었다.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고자 『정감록』 같은 동국 참서讖書를 구하며 생존을 도모하려 한 것이다.

    수운 선생은 온갖 모순으로 가득한 시대상황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동시에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경신년 4월 5일, 대우주 통치자 상제님에게 천명과 신교를 받은 수운 선생은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개벽 아닐런가.”, “하늘님만 공경하면 아동방 3년 괴질 죽을 염려 있을쏘냐.”라며 하늘님의 무궁무궁한 새 역사의 대도가 나올 것을 선언했다. 조선의 국운이 여지없이 쓰러져 가던 1894년에는 현실개혁, 사회개벽을 위한 동학혁명이 일어났다. 하지만 『동경대전』의 「안심가」를 잘못 이해하고 국제 외교정세에 전략적인 대처가 부족해 이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대한제국이 일제에게 망한 이후, ‘후동학後東學’으로도 불리는 보천교 운동으로 이어져 해방 전까지 상해 독립운동 군자금 지원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후 대한 역사 광복 운동은 1911년 『환단고기』 출간 이후 100년이 되던 해인 2011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자는 국내외에서 30회가 넘는 ‘환단고기 북 콘서트’로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왜곡된 역사를 복원하고 인류 시원의 세계문화 원형이 담긴 국통 복원을 시도하였다. 그리하여 인류의 원형문화로서 신교문화의 맥이 연면히 이어져 오다가 참동학으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신교神敎란 ‘이신설교以神設敎’의 줄임말이다. 신교는 태고의 순수 원형문화와 함께한 상고시대 문화의 핵심이었다. 인류 문화는 제1의 신교 시대인 뿌리종교 시대 즉 환국문명 시대와, 제2의 신교 시대인 줄기문화 시대, 즉 유불선 기독교 시대로 이어져 왔다. 제3의 신교 시대는 결실문화로서 무극대도가 나오게 된다.


    동학東學으로 다시 쓰는 근대사

    현재 중등 교과서의 역사 서술을 보면 근대사의 시작을 1876년에 조선과 일본이 맺은 강화도조약과 개항開港에서 찾는다. 하지만 사실상 근대 역사는 동학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동학혁명이 근현대의 세계 역사를 바꾸는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학은 1860년대에 시작되어 300만 교도가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열석 자 주문을 읽으면서 후천개벽 시대가 오기를 고대했다. 얼마 전 드라마 「녹두꽃」을 통해서 전국에 이 열석 자 주문, 시천주주侍天主呪가 전해진 적이 있다. 1894년에 일어난 동학혁명은 그 이후 동학의 3대 교주 손병희 선생이 중심 역할을 한 3.1운동으로 이어졌다. 동학은 신교문화와 민족혼의 놀라운 부활이었다. 이후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샤타그라하 운동, 이집트의 반영反英 제국주의 운동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

    동학으로 열린 근대사

    천상문답 사건과 시천주 시대 구한말 당시에 조선은 세계 열강의 여러 통상 강요로 매우 위태로운 운세에 놓여 있었다. 많은 역사가들은 근대 역사의 시작을 강화도조약으로 잡고 기술한다. 강화도조약은 일본이 운요호 사건을 핑계 삼아 강화도 앞바다에 군함 6척을 보내어서 압박하는 가운데 1876년(고종 13년) 2월에 맺은 불평등 조약이다. 조약 12조 가운데 제7조는 일본이 조선에서 자유롭게 해안을 측량한다는 내용이고, 10조는 일본이 한국에 와서 죄를 지어도 일본인이 재판하도록 치외법권을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강화도조약이 근대화의 시작이라는 시각은 식민지 역사관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진정한 한민족 근대사는 어디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가? 바로 동학東學의 개벽開闢 사상이다. 구한말 외세의 압박과 탐관오리들의 횡포에 신음하던 조선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1860년 경주 용담정에서 한 젊은 선비가 구도의 정성 속에 크게 깨침을 얻고 하늘님이신 상제님의 가르침, 즉 신교神敎를 받았다.


    제1의 신교 : 인류의 뿌리 문화 황금시절의 원형 삼도 제2의 신교 : 유·불·선·기독교 제3의 신교 : 가을 우주의 열매 진리 : (무극대도)

    수운은 위태로운 국운을 걱정하며 전국을 10년간 떠돌다가 고향에 돌아왔다. 그리고 1860년 경신년 4월 5일 용담정에서 49일 기도 끝에 천주님과 문답을 했다. 이른바 천상문답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후 수운 선생은 하느님의 새 통일문화 시대를 여는 시천주와 개벽을 노래했다. 그것은 동방의 위대한 가르침, 신교의 부활을 노래한 것이다. 일찍이 범부 김정설 선생은 ‘하늘 밑에서 가장 밝은 머리’라 불리었다. 그는 4.19혁명이 있었던 1960년대에 이렇게 말했다.

    금년으로부터 100년 전, 경신庚申 4월 5일에 정말 어마어마한 역사적 대사건이 경주 일우인 현곡면 마룡동이란 숙조산 산협에서 발생했다. 이것은 과연 ‘역사적 대강령’이고 동시에 신도성시神道盛時 정신精神의 기적적 부활이라 할 것이다. ‘국풍國風의 재생’이라 할 것이며, ‘사태史態의 경이驚異’라 할 것이다.

    1960년대에 건국대 부설 동방사상연구소에 재직하고, 동서양 종교와 철학에 통달한 범부 선생이 이처럼 최고의 찬사를 동원해서 ‘어마어마한 역사적 대사건’인 ‘천상문답’을 계기로 동학이 창도되었다고 한 것이다. 동학은 본래 ‘Religion’ 즉 종교가 아니다. ‘종교宗敎’는 일본에서 불교를 받아들일 때 부처의 근본이 되는 가르침이란 뜻으로 쓴 말이다. ‘종宗’은 부처가 직접 설법한 것이고 ‘교敎’는 그것을 알기쉽게 강해한 것을 뜻한다.

    신교문화의 맥을 이은 동학

    한민족의 새 역사 시대에 지구촌 통일문화를 선언한 동학은 지금까지 서학에 대항해서 나온 종교 이념으로 잘못 알려진 면이 있다. 하지만 동학은 사실상 기독교 문화, 서학을 수용한 동방의 가르침이다. 동학은 천주교에서 쓰는 ‘천주天主’라는 언어를 수용하였다. 그래서 열석 자 주문이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이다.

    동학에서는 ‘동학을 믿는다’고 하지 않고 ‘동학을 한다’고 했다. 동학이야말로 사람이 마땅히 가야할 도道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수운 대신사는 자신이 받은 도道를 ‘무극대도’라 했다. 수운은 경신년 용담정에서 도통한 이후 2대 교주 최시형에게 도통을 전할 때 ‘동학은 유불선 삼교의 사상을 합일한 이념’이라고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사실 그때 조선은 유교 이념이 지배하던 시절이었기에 환국, 배달, 단군조선의 국가경영 원리를 담은 「천부경」이나 삼한관경三韓管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삼신상제님과 소통하는 신교문화는 유불선 삼교를 담은 한민족의 뿌리 사상이다. “국유현묘지도國有玄妙之道하니 왈풍류曰風流라”(나라에 지극히 신령스러운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는 신라 때 최치원이 쓴 난랑비서鸞郞碑序의 첫 구절이다. 신교神敎의 풍류문화는 인류의 원형 정신문화이며, 황금시절에 빛나던 삼성조 시대의 우주 광명문화이며, 홍익인간 정신과도 상통한다.

    동학은 이후 당시 인구의 1/3인 300만 명이 믿을 정도로 교세가 크게 확대되었다. 당시 위정자들은 수운 대신사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사도난정邪道亂正으로 몰아 대구 장대에서 참형을 당하게 했다. 수운이 안장安葬될 때 “아아 용담정이여, 과연 평지가 되었구나. 선생의 부인과 자녀는 어느 곳에서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리. 구미龜尾의 기봉괴석이여, 하늘이 상심의 빛을 띠었구나. 아아, 용추龍湫의 맑은 못과 보계寶溪는 눈물 흐르는 것 같이 소리내어 흐르는구나!”(『도원기서道源記書』, 윤석산 역주)라고 사람들이 슬퍼했다.

    한민족 정신문화의 보고인 신교는 천제문화로 이어지고 그 생활문화가 고려 때까지 전해졌으나 조선 건국 초기 이후 여러 차례 고대 사서 수거령이 내려져 한민족의 원형문화가 말살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역사는 특히 일제시대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당연히 역사 주권은 표류했고 조선의 유학자들은 대개 중국을 대변하기 바빴다.

    동학이 태동한 이후 160년이 된 지금, 세계는 코로나19 병란 팬데믹으로 셧다운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동학에서 전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연코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이다. 다시 개벽과 12제국 괴질 운수로, 창조를 위한 파괴와 통합으로 열릴 지구촌 새 문명과 통일문화 시대, 개벽 세상을 외친 것이다. 어떤 논자는 당시 개화파와 척사파의 대립만 볼 것이 아니라 ‘개벽파’가 나와야 한다는 정치학적 메시지를 던졌다. 동학에서 전한 메시지가 이제는 더욱 선명히 다가오고 있다. 지금 지구촌을 보라. 코로나19는 정치·종교·사회·문화·경제 등 모든 분야에 충격을 던졌을 뿐 아니라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다.

    십이제국은 스페인, 프랑스, 독일, 영국 그리고 아시아의 일본, 미국 등 세계를 분할해서 다스리려는 제국주의 패권 국가들을 말한다. 십이제국의 괴질운수란 무엇인가? 그것은 원한의 보복과 살기로 말미암아 그 극점에서 폭발하는 전쟁, 병란, 자연재해 등의 운수를 말한다. 지금 세계는 왜 신교문화의 맥을 이은 동학의 정신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가? 신교는 환국의 황금문명을 연 정신문화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동학에는 천지질서를 흔드는 질병을 극복할 수 있는 하느님의 치유문화가 있다. 그래서 수운 선생이 “그말 저말 다 던지고 하늘님을 공경하면 아동방 3년 괴질 죽을 염려 있을쏘냐.”(『용담유사』 ‘권학가’)라고 했다.

    혁명사상으로 본 동학

    동학을 연구한 박맹수 교수는 『생명의 눈으로 보는 동학』에서 “서에 대한 동, 서학과 대립되는 동, 서를 극복하는 동東이 아니라, 생명·살림·빛·광명을 내포하는 동, 그것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아꼈던 조상들의 마음을 새롭게 되살린 게 동학이다.”라고 했다. 이 구절은 동학의 본질적 측면을 전한다. 저자는 첫째, 다시 개벽은 문명의 혁명사상이요, 둘째, 동학(동국東國의 학學)은 사상 또는 종교혁명이며, 셋째, 보국안민은 정치혁명이며, 넷째, 시천주侍天主는 사회혁명이라고 정의했다.

    동녘 동 자는 살릴 동 자다

    이중에서 첫째와 셋째에 대해서 깊이 살펴보자. 다시 개벽의 문명혁명과 보국안민의 정치혁명으로서 혁명에 대해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동학의 등장이야말로 기존 문명의 한계를 ‘다시 개벽하여’ 새로운 문명을 여는 혁명사상이라는 점을 역설하였다. 지금 지구촌에 벌어지는 괴질병란 운수는 문명 전환을 앞둔, 선후천이 교차하는 시점에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수운 대신사는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개벽 아닐런가’라 한 것이다. 그리고 보국안민의 정치혁명은 우주정치 시대의 정신혁명을 외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괴질 운수를, 비참한 삶을 초래하는 모든 문명적 요인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문자 그대로 괴이한 질병대란의 운수이다. 참동학에서는 괴질 운수를 선천 역사의 원과 한이 폭발해서 병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해석한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지나온 세상에서 원한 맺혀 죽어간 신명들의 원한이 일시에 폭발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남녀 평등사상으로서의 동학

    19세기 말 삼정의 문란과 외세 침략의 틈바구니에서 나온 동학과 동학혁명은 사회개벽·문명개벽·역사개벽·후천개벽으로 연결된다. 당시 동학혁명은 봉건적 신분제도와 정치의 변화를 초래하고 있었다. 폐정개혁안 12조 중에는 ‘2) 탐관오리는 그 죄를 엄징할 것, 5) 노비문서를 불태울 것, 7) 청춘과부의 개가를 허락할 것’과 같은 조항이 있다. 여기에서 남녀평등과 인간존엄의 사상이 깔려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국안민으로서의 정치혁명

    동학 성립의 의의는 어디에 있을까? 동학이 세운 우리의 주체적 ‘근대성’에 대해서 도올 김용옥은 이렇게 전했다.

    “우리 민족의 근대성의 뿌리를 생각할 때 가장 창조적이고 자각적인 사상을 제출한 인물로서 나는 해월 최시형 이상의 인물을 생각할 수가 없다.”


    1863년 8월, 최제우 대신사에게 도통을 전수받은 해월海月 선생의 업적은, 수운 선생이 순도한 후에 동학조직을 정비 강화하고 『동경대전』 등의 경전 간행을 통해 동학의 교리를 체계화하고 1894년 동학사상을 조직화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다. 해월이 없었다면 보국안민과 후천개벽으로 새 세상을 열고자 했던 외침 동학혁명은 단순한 울림으로 전해지고 말았을 것이다.

    접주제接主制라는 조직이 전국망으로 확산되었지만 해월은 38년간 수배자로서 자신의 생애 대부분을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산간 지방에서 보냈다. 동학은 전국적 접주조직을 통해 재건되었다. 동학혁명은 30만 명 이상이 희생되고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동학이 전한 정신은 3.1혁명으로 이어지고 독립운동사의 정신적 원천이 되었다. 그리고 ‘후동학後東學’인 보천교普天敎의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혁명에 앞장선 전봉준 장군, 3.1운동에 적극 참여한 동학 3대 교주 손병희와 참동학의 서막을 연 보천교의 차경석, 상해임시정부 의장 김구 선생과 같은 한국정치에 새 장을 연 인물들의 정신세계는 동학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는 기록의 유산이다. 동학은 9천 년 역사의 뿌리 문화, 신교 문화가 토대로서 한민족과 인류 정신문화의 유산이며 말 그대로 동방의 참 가르침이다. 동학은 동방의 백성들이 받들어 온 삼신상제님의 가르침이 그 바탕이다. 지난 시대의 정치·종교·문화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선언했다. “유도儒道 불도佛道 누천년累千年에 운이 역시 다했던가.(「교훈가」) 낡은 정치·종교·문화와 묵은 이념의 시대를 넘어서 태고 인류의 황금시절의 원형 문화를 가진 동방 한민족의 새 생활문화가 활짝 열리기를 수운은 기대했던 것이다.

    구한말 당시에 구국을 외친 민족종교나 유불선 기독교에서 나온 독립운동, 의병운동은 그 뿌리가 신교문화, 원형문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정신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미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기독교 문화가 국내에 많이 알려지고 국내에서는 대종교나 단학회 같은 민족종교의 역할이 중대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독립운동의 중심 센터는 자금을 많이 댄 정읍 보천교였다. 당시 독립운동 자금은 상해임시정부의 조직과 운영에 결정적인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현대사에서 동서 정신문화의 핵심이 되는 독립운동의 역사는 자세히 조명되지 않은 채 100년이 지났다. 그러나 이제 『환단고기』 출간 100주년 해(2011년)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2019년)를 지나면서 많은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지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사에 큰 자취를 남긴 김구 선생이 광복 후 이 땅을 밟으면서 ‘정읍 보천교에 대한민국은 신세를 졌다’고 외쳤고,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 박사는 정읍에서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동학정신은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적 뿌리였다. 역사를 이끄는 것은 정신문화이며, 그것을 통해 정치와 종교로 세상을 다스리고 가르치는 것은 사람이다.

    이제 동방의 가르침에서 제시한 ‘개벽’의 정신을 바탕에 깔고 근현대사를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 나아가서 지난날 서구 제국주의 패권문화에 상처받은 세계사를 치유해서 지구촌 인류에게 잃어버린 태고시대의 꿈과 새로 열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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