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 시선 ‘우리 곁의 친일 잔재’ (3부작)
EBS 다큐 시선
‘우리 곁의 친일 잔재’
지난 1월 3일 EBS는 3·1 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하여 ‘우리 곁의 친일 잔재’ 3부작을 방영했다.
1부 제국의 학교 교육계에 남아있는 친일 잔재
일제강점기 학교 강단에 섰던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근대화되어 있다. 우리는 근대화된 일본을 배워야 한다. 따라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어린 제자들을 황국신민의 병정으로, 전쟁을 지원하는 근로정신대로 보낸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놀랍게도 ‘애국’이었다.
“일본 다음에 2등 국민이라도 되어야 우리 민족이 보존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벌이는 전쟁, 성전聖戰에 조금이라도 기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후세들, 우리 한민족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다. 일본을 위하는 것이 우리나라를 위하는 것이다.”
강단에 선 스승이 하는 말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순수한 영혼들을 죽음의 길로 내몰았다.
“우리는 노예 생활을 했어요. 크고 높게 철조망을 해놓고 그 안에 우리를 가둬놓고 살았으니까. 밥을 제대로 많이 줘요? 기숙사 안의 풀을 무조건 다 뜯어서, 배가 고프니까 땅바닥에 아무 풀이나 다 뜯어먹은 거예요.” - 김정주(88세),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강제 징용 피해자
친일파 동상을 세워놓고 기리는 학교
일본은 조선인을 전쟁 도구로 이용했다.
“정전征戰을 뒤에서 지키는 맹서-근로의 정신” (추계학원 설립자 황신덕) “대의에 죽을 때까지 황민 됨의 책무는 크다.” (고려대학교 설립자 김성수)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이화여대 교장 김활란)
일본을 위한 전쟁에 나가서 황국신민으로 싸우다 죽으라고 했던 사학재단의 설립자들. 해방 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은 학교 교정에 버젓이 서 있다. 동상 철거와 친일행적 안내문을 설치하는 학생들은 말한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된다는 거죠. 저희는 더 이상 일제 강점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 뒤로 많은 역사가 흘렀는데 아직도 이런 잔재가 남아 있는 것은 우리가 뭔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민정, 추계예술대학교 학생회 사무국장)
우리 곁에 있는 식민사학
일제는 한국, 한국인, 한국 역사, 한국 문화 모든 것을 폐멸시키고 일본, 일본인, 일본 문화, 일본 역사를 학생들에게 이식했다.
1925년, 조선총독부는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고 조선 역사를 정리했다. 1938년 『조선사』를 발간하면서 “조선인들에게 선물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미개한 식민지인들, 자국의 역사도 모르고,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는 조선인들에게 『조선사』는 축복이라는 뜻이었다. 조선총독부가 쓴 『조선사』는 아직도 학생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다.
“이병도 선생이 쓰다 소키치가 강의하는 현장에서 수업을 들은 다음에 한국에 와서 진단학회 만들고, 삼한론 펴고 서울대 교수로 1945년 임용돼서 한국사 교과서를 만드는데 그 제자들이 다 따르고, 이렇게 만들어진 역사가 대한민국 한국사 교과서 아니겠어요? 이 교과서를 통해서 온 국민이 상식으로 된 것이 삼한입니다. 그 다음에 태조대왕, 고이왕, 내물왕 체계죠. 이것을 무너뜨린다는 거, 이것을 바꾼다는 것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넘어가는 것보다도 쉽지 않을, 아주 어려운 지난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죠.” (이종욱 서강대 사학과 명예교수)
그러나 한국 역사학계는 광복 후에 식민사학을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다며 식민사학 잔재 청산을 쇼비니즘으로 매도한다.
2부 미술, 친일을 그리다. 미술계에 남아있는 친일 잔재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게 3년이거든요. 3년도 채 안 될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만 35년이 넘었고, 그전의 35년까지 하면 70여 년 동안 우리를 지배했는데 왜 우리 속에 일제 잔재가 없겠습니까. 현장에 있는 사람이나 교육정책을 다루는 정부나 시민운동가들이 왜 이걸 반성 안 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이치석 『전쟁과 학교』 저자)
만 원권에 나오는 세종대왕 표준 영정을 그린 운보 김기창,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을 그린 이당 김은호, 충무공 이순신과 다산 정약용 그리고 독립운동가 윤봉길의 표준 영정을 그린 장우성은 모두 친일 화가였다.
“왜 친일 화가들이 용납되었냐면, 근대화라는 것이 기능, 기량 이런 측면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잘 살면 된다’라는 도구적인 발상들이 우선되었기 때문에 결국 예술도 도구적인 측면에서 이용된 것이죠.” (이택광 문화평론가)
친일 화가들의 광복 후 행적은 오히려 화려하다.
“해방 이후, 특히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미술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옛날 총독부가 주최했던 조선미술전람회의 제도 방식을 그대로 계승한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이른바 ‘국전’이라는 것인데, 이 국전에 핵심 세력으로 진입하게 되면서 미술계의 가장 역량이 높은 인물이 되었기 때문에 친일 청산에 대한 논의가 그만큼 지연되거나 아니면 묻혔다고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최태만,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교수)
회화뿐만 아니다.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도 1969년에 친일파 김경승이 만들었다.
“이건 정말 우리 사회가 반성하지 않고 후안무치의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볼 수 있어요. 이런 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살아생전에도 제대로 대접을 하고 이러한 정신을 후대에 기리게끔 해야 하는데, 지금 이런 식으로 이분을 기념한다고 했을 때 과연 무엇을 기념할 수 있을지, 이건 차라리 모욕을 주고 욕 먹이는 일이거든요.” (김민수, 서울대학교 디자인역사문화전공 교수)
3부 음악에도 친일이 있나요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 한 줄기 해란강은 천 년 두고 흐른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곡으로 꼽히는 「선구자」는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친일파 윤해영이 쓴 「용정의 노래」라는 시에 조두남이 곡을 붙인 노래로, 용정의 처녀가 말 탄 일본군 장교를 짝사랑하는 내용이다.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 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 산천 경계 좋고 바람 시원한 곳 희망의 나라로”로 시작하는 「희망의 나라로」는 1931년 만주사변 때 만들어진 곡으로 ‘섬나라 일본이 대륙으로 가야 한다. 침략해야 한다’는 뜻을 담은 노래다.
우리는 친일 음악가가 누구인지, 친일 음악이 무엇인지 배울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특히 음악 분야에서는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와 있는 41명의 음악가가 있는데 그분들이 대개 다 교과서를 만들어 왔어요. 편수 작업을...”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지부장)
‘안익태의 애국 음악’으로 평가받는 「한국환상곡」 마지막에는 애국가가 담겨 있다. 그러나 「한국환상곡」은 일제가 세운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해서 안익태가 일왕에게 바친 노래 「만주환상곡」과 유사하다.
“역사 정의라고 하는 차원에서 볼 때, 우리가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던 큰 과오가 있지 않습니까? 그게 여전히 지금도, 특히 애국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치유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는 거죠.” (이해영,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교수)
“만주국에 썼던 것을 광복 이후에 「한국환상곡」에다가 사용했다는 것은 역사의식이라든지, 현실에 대한 인식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없는 게 아니라 아주 부족한 거죠.” ( 천현식,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시청 댓글 모음
너무 충격적이에요.
작성자 김*나 (hel****)
우리가 아직 몰랐던 친일의 잔재가 너무나 많이 남아있고 또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 곁에 녹아있단 사실이 소름끼치도록 무서웠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교과서까지 일본이 우리 영토를 축소해 왜곡하고 날조하기까지 하고. 그런데 우리는 그 교과서를 사실로 여기고 아무렇지 않게 배운다는 것이 슬픕니다.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안 된 게 너무 안타깝네요. 유익한 방송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방송들이 많이 방영되고 많이 알려져서 많은 분들이 아픈 과거와 또 실제로 피해를 입으신 피해자 분들의 고통을 잊지 않으셨음 좋겠습니다.
친일의 흔적이 암세포처럼 퍼져
작성자 이*향
친일 흔적이 암세포처럼 뿌려져 있는 방송 내용을 보고 참으로 부끄럽고 개탄스러움을 느낍니다. EBS 제작진 분들 큰일하고 계시네요. 적극 응원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온 국민이 알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너무 충격적이라 이렇게 올리네요.
작성자 박*
어제 방송 보고 충격 받아서 잠을 제대로 못 잤네요. 제가 그동안 ‘우리 역사에 대해 너무 무관심 했다’는 반성이 드네요. 오랜만에 다시 삶에 각성이 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의 식민사학자들
작성자 신*근
조선사편수회 출신의 식민사학자 이병도, 신석호가 해방 후 서울대, 고려대 교수가 되면서 일본 조선총독부 사관(식민사관)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통탄할 일이죠. 오늘 방송 감사합니다. 하지만 보다 더 적나라하게 밝혀서 국민들이 이 사실을 알게 해야 합니다. 방송에서도 나왔죠.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정도의 어려움이라고. 기존의 방송 역시 시민사학을 추종하는 자들이 있어서 이런 방송이 어렵습니다. EBS만 가능한 것이죠. 응원합니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EBS에 달려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친일이 어쩔 수 없었다??
작성자 이*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하나하나 차근히 시간이 걸리더라도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바로잡지 않으면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게 됩니다. PD님, 힘내십시오. 무한한 지지와 격려를 보내 드립니다!
치가 떨립니다
작성자 박*영
농락당한 기분입니다. 청산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가 목을 조이는 느낌입니다.
보는 내내 가슴 아프고
작성자 은*훈
안익태가 나치 부역자였다니, 제가 배우고 불렀던 노래들이, 좋아했던 노래들이 일본 왕을 위한 노래였다니... 3부작 다 봤지만 인생 자체를 속은 기분입니다. 나는 누구지? 내가 배웠던 사실들이 어느 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니 허탈할 뿐입니다.
아무튼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 사실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꿈에서 깨어난 기분입니다. 추신: 혹 가능하시다면 책으로 내 주시면 영원히 간직하고 자손대대로 물려주고 싶습니다. 또 못 다한 이야기도 더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