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대한사랑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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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통맥 바로잡기ㅣ가야 ③
한반도의 가야는 임나가 아니다
글·사진. 박유태 기자
제국주의가 만연하던 시기, 일본군 참모본부는 1882년에 『임나고고』와 『임나명
고』라는 책을 출간하여 임나를 한반도의 가야와 동일시했다. 이를 통해서 일본은
조선 침략의 근거로 임나일본부설을 만들었다. 이 설은 『삼국유사』 원본까지 조작
한 이마니시 류와 명성황후 시해에 앞장선 아유카이 후사노신과 같은 인물들의 조
작과 왜곡으로 더욱 확고해졌다. 특히 광복 이후에 [조선사편수회] 출신인 쓰에마
쓰 야스카즈는 임나가야설과 임나한반도설을 구체적으로 그려낸 『임나흥망사』라
는 책을 출간하여 우리의 강단사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한국을 드나들며
우리 학계에 깊이 관여하였다. 결과적으로 식민사학을 극복하지 못한 우리 강단사
학계는 여전히 가야의 별칭이 ‘임나’라고 주장하며 가야가 임나임을 단언하고 있
다.
그러나 역사학계가 옹호하는 『일본서기』의 사료를 엄밀하게 검토하고 『삼국사
기』와 비교해 보면, 임나는 가야와 동일시될 수 없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 수 있
다.
가야의 건국 시기
임나는 한반도의 가야가 아니다. 먼저 건국 시기를 보자. 임나는 언제 누가 건
국했는지, 그리고 가야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자. 가야는 분명히 42년에
김수로왕에 의해 건국되었다. 42년 이전에 가야가 존재할 수 없다. 만약 임나
가 금관가야라고 한다면, 임나는 42년에 건국되어야 한다. 그러나 임나는 기록
상 『일본서기』<숭신천황 65년조(BCE 33년)>에 처음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최소한
BCE 33년 이전부터 임나가 존재해야 한다. 이는 가야가 건국된 42년보다 75년
이나 앞선 일이다. 이 차이는 무시할 수 있는 연도 차이가 아니다. 가야와 임나는
건국 시기에서 큰 차이가 있다.
실제로 임나를 다룬 다른 문헌들을 보면, 임나는 가야의 건국 시기와 2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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