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월간 대한사랑_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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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성 북쪽 2.5㎞의 거리에는 환도성이 자리잡고 있어 평상시 왕성으로 국내성에 거
                주하다가, 유사시 방어용 거점으로 산성을 활용했던 고구려 도성제의 특징이 드러난다.

                현재는 산성 위에 나무를 심어 나무의 뿌리가 뻗어나가 산성이 훼손되고 있다. (➃번 사진)



                우산하 고분군

                  우산하(禹山下) 고분군은 우산 아래의 산기슭과 평야지대에 위치한다. 태왕릉과 장군총
                같은 계단식 돌무지무덤과 오회분(五灰墳, 5개 무덤이 모인 모습이 투구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 무

                용총(춤), 각저총(씨름)과 같은 돌방벽화무덤들이 있다. 현재는 벽화의 보호를 위해 내부관
                람이 금지된 상태이다.



                  1) 광개토태왕릉

                  현재 고분 위 표면에 쌓았던 큰 돌들은 거의 없어지고 자갈과 풀이 덮힌 흙산으로 보
                이지만, 원래의 모습은 장군총처럼 둘레를 계단식으로 쌓아올리고 현실(玄室)을 상부에

                만든 방형의 계단 석실묘였다. 왕릉의 높이는 14.8m에 한 면의 길이가 66m로, 장군총
                보다 무려 네 배가 큰 대형고분이다. 현실은 2.8m×2m로 장군총보다 작다. 내부는 오
                래전에 도굴당하여 텅비어 있으며, 관을 놓았던 대가 존치되어 있다. 청나라 말기 ‘願太

                王陵安如山固如岳(원태왕릉안여산고여악)’이 새겨진 기명 전(磚, 벽돌)이 나왔고, 2003년에는
                ‘辛卯年 好太王 所造鈴 九十六(신묘(391)년에 호태왕이 이 방울을 만들었는데, 96번째이

                다)란 글이 새겨진 청동방울이 출토되어 광개토대왕릉으로 추정하게 되었다. 같은 해 발
                굴 조사 당시 무덤 입구의 뒤쪽으로 여겨지는 방향에 거대한 제단터가 발굴되었는데, 능

                과 한 구조로 쌓은 것이었다. 폭이 4~5m 길이는 약 60m로 100여 명이 의식을 거행할
                수 있는 규모다.



                  2) 장군총
                  장군총은 규모가 태왕릉, 천추총 다음으로 크다. 묘역 밖 뒤 좌측에 배총군이 있다. 일

                반적이지 않게 각 모서리를 방위에 맞췄는데, 석실 입구의 좌측 모서리는 남쪽, 우측은
                서쪽으로 각각 향하게 하였다. 무덤의 정상부에는 돔형의 기단석에 돌려가면서 둥근 구

                멍이 21개 뚫려 있어 난간을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정상부와 각 층의 상면(테
                라스)에서 발견된 다수의 기와들은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 덮었던 지붕용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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