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5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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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교과서 세종 육진의 위치 비정 비판 최원호
아르쩨미예바는 수류봉 성을 처음에는 수습 유물과 축성 구조물을 통해 한국의 고려국
(935~1392) 존속 시기로 편년했다.(아르쩨미예바 N.G. 외, 2016) 그 시기의 유적은 연해주 지역
에서는 처음 발견된 것이었다. 입지와 축성 구조물을 통해 볼 때에 이 성은 경계성의 기능을 가졌었
다. 이후의 조사는 성의 축조시기가 조선(1392~1897)의 국경이 형성되던 시기로 판단할 수 있게
하였다. 바로 그 때에 두만강 남쪽 땅에 대한 통제권을 손에 넣고 그 지역에 살던 여진인들을 몰아
낸 다음에 조선은 여진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습격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새로운 영토들에 대한
방어와 공고화를 위해 1434년에 ‘6진’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는 6개의 방어부가 설치되었고, 그
주변에는 방어 진지-성이 축조되었다.(꾸르바노프 S.O.,2009) 바로 그와 같은 진지와 수류봉 성
을 관련시킬 필요가 있다. 56)
아르쩨미예바가 발표한 수류봉 성이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오는 현성인지 부합성을 떠나 주목할
부분은 두만강 건너 연해주 지역에 조선식 산성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리지의 기록처
럼 현성뿐만 아니라 어라손참이라 불리던 석성과 거양성까지 언급되고 있는데 앞으로 중국과 러
시아의 관계기관과 합동 연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흑룡강성과 연해주 지역에 대
한 답사 및 연구를 통해 조선 시대의 유적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조선 전기의 국경사 연구
의 전환점이 생길 것이라고 본다.
Ⅲ. 맺음말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조선 전기인 세종 때 개척한 6진 지역이 현재 북한의 두만강
변인 함경북도 지역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은 건국 당시부터 역사지리의 중요성을 인
식하고 세종부터 성종 때까지 다양한 관찬 지리지를 편찬했다. 특히 6진 개척과 관련해 당대의 기
록인 『세종실록』 지리지의 내용을 보면 현재 6진 위치 비정과 비교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기록에는 6진에 해당하는 여섯 도호부의 사방 경계가 기록되어 있고 특히 북방 경계를 알
수 있는 ‘공험진’과 ‘선춘령’에 이르는 노선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최근 평화문제연구소가 북한
의 ‘과학백과사전출판사’와 공동 편찬한 [조선향토대백과]에 기록된 육진 지역을 [세종실록지리
지]에 기록된 사방 경계와 비교해 위치 비정의 문제점을 알아봤다.
북한의 함경북도 지역의 6진에 해당하는 총 면적이 세종실록지리지에서 기술하고 있는 사방경
계의 면적보다 최소 두 배 이상 작다는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 김구진을 필두로 최근의 복
기대, 이인철 등의 논문을 통해 육진 중에서 가장 북방 경계를 포함하고 있는 경원도호부와 ‘공험
진’, ‘선춘령’의 위치가 두만강 이북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최근 인하대 고조선연구
소에서 주최한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고려-조선시대 고고학 현황]에 관한 학술회의에서 연해주
56) 아르쩨미예바 N.G./정석배 옮김, 「연해주 지역의 조선시대 성에 대한 첫 번째 조사」,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자료집,
(2017), 2쪽,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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