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4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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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옛 갑산부에 있었으나 일제가 현 압록강 이남에 위치를 설정하지 않은 보(堡), 진(鎭), 지류, 중요
지명: 운파관, 운룡, 진동, 허린, 동인, 호린, 웅이, 종포, 천봉사, 오씨천, 신대신수, 검천수, 비비포
(飛非浦), 서수라덕(西水羅㯖), 자개수, 임연수(臨淵水), 치부수, 한덕입지당(갑산부에서 백두산 갈
때 마지막 쉼터).
대동여지도 등 함경도를 그린 고지도에는 백두산에서 갑산부까지를 350여리라 기록했는데 갑
산부의 동인역(만량진)에서 옛 한덕입지당을 거쳐 역참로를 따라 옛 백두산 근방 삼지(경박호 서쪽
끝 지역)까지 350리이다. 또 대동여지도 등 함경도를 그린 고지도에는 백두산에서 무산부까지를
280리라 기록했는데 무산부위(라자구진)에서 대흥구진(조선의 역참 명 모름)을 거쳐 역참로를 따
라 옛 백두산 동쪽 끝 지점(경박호 동쪽 끝 지역)까지 280리이다. 대동여지도 등 함경도를 그린
고지도에 백두산 대지의 둘레가 80리라 기록되었는데 경박호(옛 백두산 대지) 둘레는 80리가 넘
는다. 경박호 제방을 높여 호수 둘레가 더 길어진 것 같다. 참고로 현 백두산(옛 장백산) 천지의 둘
레는 23리 정도이다.
Ⅱ. 세종대왕의 육진과 두만강의 위치 연구 내용(원문[14])
조선의 육진의 고지도들은 현재의 두만강 유역의 육진을 그린 것이 아니다. 경흥, 경원, 온성, 종성,
회령, 무산과 현 두만강(옛 石乙水 + 훈춘강)과의 대역적 위상관계는 조선의 고지도와 잘 맞게 인위
적으로 매우 잘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인위적 조작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졌는지를 정확하
게 아는 학자는 한국에는 없다. 1894년(명치 27년)일본이 제작한 동아시아지도 일청한3국명료전
도(日淸韓三國明瞭全圖)(참고[7])에서 현 두만강에 경흥, 경원, 온성, 종성, 회령, 무산의 위치를 배
치하고 현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표기하였다.
현 두만강(옛 石乙水 + 훈춘강)과 육진의 위치는 조선의 고지도와 대역적 위상으로 매우 잘 맞지
만 경흥, 경원, 온성, 종성, 회령, 무산의 고지도를 각 지역별로 위상적 분석을 하면 북한의 경흥,
경원, 온성, 종성, 회령, 무산의 위상도와는 맞지 않는다. 육진의 고지도의 각 주기나 함경도(비변사
인방안지도) 고지도를 보면 각 육진에는 6개의 부위 성과 18개의 작은 성인 보(堡)가 있다. 하지만
북한의 경흥, 경원, 온성, 종성, 회령, 무산 지역에는 크고 작은 성터가 구글지도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북한에서 옛 성터들이 이들 지역에서 발견되었다는 기록도 본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조선 시대 고지도에 나타난 경흥, 경원, 온성, 종성, 회령, 무산이 현재 북한 두만
강 유역에 위치한 것이라고 믿고 있고 의심조차 하고 있지 않는다.
함경도(비변사인방안지도) 지도([그림 1]), 김수홍의 조선팔도고금총람도(1673년), 대동여지도 연
구와 규장각에 있는 조선시대 육진의 여러 종류의 고지도를 연구하면 세종대왕의 육진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다([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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