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대한사랑 6호 특별판
P. 65

역사왜곡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을                           역사왜곡      삼국의 건국 시기
                  10       대동강 평양으로 서술                             11




                   우리는 여지껏 ‘장수왕이 남진 정책으로 도읍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

                 을 대동강 평양으로 옮겼다’고 배웠다. 그런데, 평                    신론’을 제기하여 고구려·백제·신라의 건국 연대를
                 양 천도는 동천왕 대에도 있었다. 만약, 평양 천                     4세기 이후로 늦췄는데, 지금까지도 삼국이 고대

                 도가 남진정책의 일환이라면 동천왕의 평양                          국가로 성립했던 시기를 율령 반포와 불교

                 천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고구려 평양과                        수용, 왕위 세습이 완성된 2~4세기로 늦춰
                 지금의 평양이 같다는 생각은 우리 역사를 보는 눈                     서 강조하고 있다.

                 을 어둡게 한다.
                                                                    고구려는 4세기 후반 소수림왕 때 불교를 공인
                                                                    하고 율령을 반포하였다. 백제는 율령 반포에 대
                   장수왕은 … 국내성에 기반을 두고 있던 귀족 세
                                                                    한 기록은 없지만, 3세기 고이왕 때 중앙 집권적
                   력을 약화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수도를 평
                                                                    통치 체제의 기틀을 마련하고 4세기 후반 침류
                   양으로 옮겼다(427). 평양은 대동강 유역의 평야를
                                                                    왕 때 불교를 공인하였다. 신라는 6세기 법흥왕
                   끼고 있어 물산이 풍부하고, 바다로 진출하기에 유
                                                                    때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하였다.
                   리하였다.
                                                                    덧  고등학교 한국사, 미래앤, 17p.
                   덧  중학교 역사2 비상, 27P.

                                                                    고구려에서는 2세기 태조왕 이후, 백제에서는 3
                   지금의 평양, 평안남도 중심 도시를 옛 평양으로
                                                                    세기 고이왕 이후 왕위가 세습되기 시작하여, 신
                   알면 평양의 역사를 잘못 알 뿐 아니라, 곧 조선
                                                                    라에서는 4세기 내물왕부터 김씨 집안에서만
                   의 역사를 잘못 아는 것이니, 그러므로 조선사를
                                                                    왕을 배출하였다. 이에 각 부 또는 소국의 독자
                   말하려면 평양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성이 약화되었고, 그 지배층은 차츰 중앙귀족으
                   환도丸都가 어디냐? 졸본卒本이 어디냐? 안시성
                                                                    로 흡수되었다.
                   이 어디냐? 가슬나迦瑟那가 어디냐? 아사달이 어
                                                                    덧  중학교 역사2, 금성출판사, 22p.
                   디냐? 백제의 육방六方이 어디냐? 발해의 오경五

                   京이 어디냐?
                                                                    삼국이 중앙 집권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는
                   이 모든 지리가 조선사에서 수백 년 이래 해결되
                                                                    … 고구려는 2세기, 백제는 3세기, 신라는 4세기
                   지 않은 쟁점이다. 그러나 그 가장 중요하고 또
                                                                    로 보고 있다. 한편, 부여와 가야는 연맹체 국가
                   유명한 쟁점은 ‘평양 위치가 어디냐?’의 문제이
                                                                    단계에 머물다가 각각 고구려와 신라에 의해 멸
                   다. 왜 그러냐 하면 평양 위치의 문제만 결정되
                                                                    망하였다.
                   면 다른 지리의 해석은 쉬워지는 까닭이다.
                                                                    덧  고등학교 한국사, 천재교육, 17p.
                   덧  단채 신채호, <평양패수고>, 동아일보, 1925


                                                                                               역사 왜곡-교과서 편  65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