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대한사랑 6호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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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여러 나라’에 낙랑군을 역사왜곡 산골짜기 고구려의
8 표시한다 9 침략전쟁?
낙랑군의 위치를 대동강 평양에 표시한 것도 문 도리이 류조(鳥居龍蔵)와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
제지만, 고조선이 멸망하고 세워진 ‘여러 나라’에 吉)는 고구려의 첫 도읍지 졸본을 오녀산성이 있는
‘낙랑군’을 표시한 것은 마치 낙랑군의 지배에서 여 지금의 환인桓仁(환런)으로 비정하였다. 이 설은 비
러 나라가 벗어나 독립하면서 세워진 것으로 착각 판 없이 받아들여져 지금도 “압록강 유역의 산악지
하게 한다. 대에서 고구려가 성립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삼
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중국의 사서들조
차도 고구려의 첫 도읍지 졸본(홀승골성)은 의무려산
이 있는 지금의 요령성 북진 지역으로 말하고 있다.
북진은 고대부터 교통과 군사의 요충지였는데, 고
구려가 이곳을 차지하면서 고구려 초기에 모본왕의
요서 진출과 태조왕의 요서 10성(55년) 축조가 가능
했던 것이다.
강단사학계는 고구려를 악의적으로 묘사한 『삼
국지』 위서 동이전을 근거로 고구려의 영토 확장을
‘산골짜기에 위치한 고구려가 식량 확보를 위해 주
변을 침략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윤내현 교수는
‘고구려의 영토 확장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고조선의 옛 영
토를 수복하는 다물 정신에 바탕을 둔 것’이라 했고,
복기대 교수는 고조선이 망하면서 분열된 여러 나
라를 고구려가 통일하려 했던 ‘통일 전쟁’이라 보고
있다.
압록강 중류 일대 산이 많은 지역에서 성립된 고구
려는 한의 군현을 몰아내고 주변 소국들을 복속
하면서 점차 영토를 확장하였다.
덧 중학교 역사2, 미래앤, 23p.
중국의 시각으로 서술하는 고구려의 성장
‘여러 나라’에 낙랑군을 표시함(지금의 대동강 평양)
역사 왜곡-교과서 편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