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대한사랑 2025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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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로마타이)의 공격으로 인해 세력이 이 있었으며, 마에오티스 해(아조프 해)
크게 위축되었다. 이 시기부터 흑해 북 양안에는 보스포로스 왕국 같은 나라
안에서 스키타이 고분들이 급속히 수 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기마전사였
가 줄어드는데, 이는 스카타이족이 이 던 스키타이인들은 그리스 도시들에
지역을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대거 이 대해 공납을 부과하였는데, 시간이 가
주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크림반도 면서 그 공납은 더 무거워지게 되었다.
와 다뉴브 강 하구 지역이 이들이 옮겨 그래서 크림반도의 그리스인들은 바
간 지역인데, 크림반도의 심페로폴 근 다 건너 폰투스 왕국의 왕 미트리다테
처 네아폴리스 유적은 바로 이들이 세 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야심
운 정착지로 새로운 수도였다. 후일 가였던 폰투스의 미트리다테스 6세는
크림반도에는 게르만족인 고트족도 그리스인들의 원조 요청을 내세워 스
많이 유입되었는데, 스키타이인들은 키타이 왕국을 정복하였다. 소스키티
이 고트족에 상당히 동화되어간 것으 아 왕국은 스킬루로스 왕의 아들 대에
로 추정된다. 미트리다테스에 의해 멸망하고 만 것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본(BCE 이다. 그러나 이 미트리다테스 역시 로
64~CE 24)은 그의 지리서 「지리학」에서 마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자 크림반도
스키타이인들에 대한 기록을 약간 남 로 도망가 그곳에서 자결하였다. 이것
겼는데, ‘말젖을 먹고 수레 위에서 사 이 로마 역사서에 나오는 ‘미트리다테
는’ 스키타이 유목민들이 부에 오염되 스 전쟁’의 결말이다.
지 않고 소박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스키타이인들은 크림반도로 내려온
라고 칭찬하였다. 스키타이가 스킬로 후 차츰 유목생활을 버리고 정착생활
루스 왕 지휘 하에 흑해 북안에서 이 로 전환하였는데, 주변의 그리스인들
동하여 드네프르 강 하구와 크림반도 의 문화를 받아들여 그리스식으로 집
일대에 정착하였는데, 스트라본은 이 을 짓는 등 그리스식 생활을 즐겼던
나라를 ‘소(小)스키티아’라고 부르고 있 것 같다. 스킬로루스 왕의 영묘로 추
다. 흑해 북안에 있던 예전 스키타이 정되는 석조건물이 크림반도의 심페로
국가보다 규모가 크게 줄었기 때문에 폴 근처에 남아 있는데, 당시 스키타이
그렇게 부른 것이다. 지배층이 그리스 문화에 크게 동화되
그런데 당시 크림반도에는 케르손네 어 갔음을 보여주는 증거의 하나가 될
소스 같은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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