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7 - 대한사랑 6호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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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의 뿌리, 삼랑                                      화랑의 기원




                   지금으로부터 5,919년 전, 3천 명의 제세핵랑濟                    13세 흘달 단군에 이르러 고조선 전역에 소도를
                 世核郞 젊은이가 환국 문명의 정수를 가슴에 품고 환                    많이 설치하여 신교를 진작시키면서 출범한 ‘국자

                 웅천왕과 함께 동방 땅으로 왔다. 이들은 동방 문명                    랑國子郞’ 또한 고조선의 낭가이다. 미혼의 자제들
                 을 최초로 개척한 배달의 건국자들이다. 환웅천왕                      중에서 선발된 이들은 소도 바로 옆에 지은 경당扃

                 께서는 곧 ‘삼랑三郞(삼시랑三侍郞)’이라는 관직을 만                   堂에서 글공부를 하며 활쏘기, 말달리기, 검술 등으

                 드셨다.                                            로 체력을 단련하고, 예절, 가악을 배우고 익혔다.
                                                                 소도의 경당에서 ‘문무를 겸비한 인재’가 나라의 동
                   호 수 삼 신       이 리 인 명 자     위삼시랑
                   護守三神하야 以理人命者를 爲三侍郞이니                          량으로 배출된 것이다. 국자랑은 밖에 다닐 때 머리

                   본 삼 신 시 종 지 랑                                 에 천지화天指花를 꽂고 다녔으므로 ‘천지화랑天指花
                   本三神侍從之朗이오.
                                                                 郞’이라고도 불렀다. 이들은 평상시에는 학문과 무
                   삼신을 수호하여 인명을 다스리는 자를 삼시랑                      예를 동시에 연마하며 완전한 인격체의 길을 추구

                   三侍郞이라 하는데, 본래 삼신을 시종持從하는 벼
                                                                 하였고, 유사시에는 나라를 구하는 데 있어 목숨을
                   슬이다.                                          바쳤다. 국자랑의 별칭인 천지화랑에서 신라 화랑

                   덧  『태백일사』 「신시본기」
                                                                 의 이름이 나온 것이다. 신라가 천년 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화랑도의 정신과 기강이 살아 있었
                   삼랑은 배달 시대에 삼신 상제님을 수호하는 관
                                                                 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라의 화랑은 한민족사의
                 직이었다. 삼신 상제님의 신교 가르침에 따라 백성
                                                                 낭가의 맥 속에서 그 궤를 함께하는 ‘삼랑 화랑’인
                 을 교화하고 형벌과 복을 주는 일을 맡은 자를 낭郞
                                                                 것이다.
                 이라 하였다. 삼랑은 신교 정신으로 무장한 신교의

                 수호자이자 국가와 백성의 수호자였다.
















                                                                           강화도 마리산의 삼랑성

                                                                           (현 정족산성)

                                                                           단군왕검께서 재위 51년(BCE 2283)에 쌓으셨다.
                                                                           이름에서 삼랑의 정신이 전해지고 있다.



                                                                                              국통맥 특집 | 5 신라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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