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1 - 월간 대한사랑_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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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9
은 중국으로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가담하였고, 유교계도 「독립선언서」에
빠져 망국 책임론에 위축된 분위기를 씻고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
었다.
심산 김창숙의 생애 다섯 단계
한국학의 원로학자인 이우성 교수는 『심산 김창숙의 사상과 행동』 중 ‘심산의
민족독립운동’에서 심산의 생애를 다섯 시기로 구분하였다.
⊙ 제1기 1905년~1910년
성주 지방에서 대한제국 망국을 앞두고 활동을 시
작한 심산의 초년기다. 을사늑약 때 스승인 대계(大
溪) 이승희(李承熙)와 함께 상경하여 「청참오적소(請斬五
賊疎)」를 올렸고, 그 뒤 일진회 매국 도당들이 한일 합
병론을 제창할 때 동지를 규합하여 중추원에 성토의
글을 보냈다. 한편 대한협회에 가담, 성주 지부를 조
직하여 계급 타파를 부르짖고 단연회 기금으로 사립
성명학교를 세워 신교육을 고취하였다.
심산의 스승, 대계 이승희
⊙ 제2기 1910년~1918년
경술국치 후 통분한 심정을 이기지 못하여 음주와 양광(佯狂, 거짓으로 미친 체함)으
로 날을 보내다가 모친의 따뜻한 교훈에 격려되어 집안에 들어박혀 독서로 유학
(儒學)에 정진하였다. 학문 축적 이후 보인 한문 문장 등은 모두 이 시기에 이루어
졌다.
⊙ 제3기 1919년~1927년
항일 독립운동가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일정한 위치를 확보하게 된 시기
로 1919년 3.1 혁명 직후 전국 유림을 규합하여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137명
의 연명으로 된 『파리장서』를 휴대하고 출국하였고, 1925년 내몽골 중부 지대에
새로운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위한 자금 조달 관계로 국내에 잠입 활동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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