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9 - 월간 대한사랑_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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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9
들어가는 말
우리 역사에서 선비의 정통 맥은 고려말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
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김굉필(金宏弼)-조광조(趙光祖)-조식(曺植)·
이황·이이-정약용으로 이어진다. 대한제국 말기에는 구례 선비 매
천 황현(黃玹)을 들 수 있고, 마지막 선비로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1879~1962)을 드는 데에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붓을 든 선비가 칼을 든 무반(武班)을 압도하며 600년 종묘사직을
지배하며 지켜 온 힘은 바로 조선 선비의 맥이다. 선비 가운데 진유
(眞儒)도 있었지만, 부유(腐儒)도 적지 않았다. 진유들에게는 시련이 따
랐고, 부유들에게는 권부(權富)가 주어졌다. 참 선비가 흔치 않았던
시절, 심산은 참 선비가 되었다. 유학 경서나 읽고 거들먹대는 선비
가 아니라 시대의 악과 처절하게 맞서 싸운 선비였다. 그가 타도하
고자 한 ‘시대의 악’은 일본 침략주의 세력이었다. 해방 뒤에는 민족
분열의 분단과 이승만 독재 세력이었다.
백절불굴의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
심산은 28세에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1906년 국채
보상운동이 시작되자 전국 단연동맹((斷烟同盟, 금연운동 단체) 성주 대표
로 활동하는 것을 시작으로 매국노 성토 운동, 유림들의 독립청원서
인 「파리 장서」 주도, 임시정부 참여, 신채호와 『천고』 발행, 독립운
동 기금 마련을 위한 밀입국과 이에 따른 유림단 사건, 나석주 의사
의거 주도, 일경에 피체되어 국내 압송, 무기징역형을 받고 가혹한
고문으로 앉은뱅이 신세가 되었다.
창씨개명 거부, 해방을 맞이하여 통일 정부 수립 운동, 성균관대학
교 설립, 반독재 민권 투쟁으로 투옥 등 84년 생애를 오로지 조국 독
립과 통일 정부 그리고 반독재 민주화에 바쳤다. 20세기 초 일제의
을사늑약과 국권 피탈, 강제 점령으로부터 1962년 박정희 군사 쿠
데타에 이르기까지 격동하는 한국 근현대사의 시대의 악과 구조적
악에 맞서 싸우고, 그런 과정에서 참된 유학 정신을 기리고자 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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