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북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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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나라, 환국

환국의 환은 ‘밝을 환桓’ 자로 광명을 상징한다. 특히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하게 빛나는 광명’, 천광명天光明을 상징한다. 환국 사람들은 태양을 광명이 모이고 삼신이 머무는 곳으로 여겼다. 광명은 곧 삼신상제님의 신성과 지혜를 상징한다. 이로 볼 때, 환국은 다름 아닌 ‘천상 삼신상제님의 나라가 인간 세상에 이식된 첫 나라’이다.

인류의 첫 나라인 환국은 삼성조의 첫 시대로 ‘조화신造化神의 신성을 구현한 때’였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대자연과 한마음이 되어 천지의 조화기운 속에 살던 시대였다. 때문에 ‘사람을 사귐에 친하고 멀리하는 구별이 없고, 높고 낮음의 차별이 없었으며’(태백일사』) 전쟁과 폭력이 없어, 모든 사람들이 천지의 광명을 직접 체험하며 무병장수하는 신선의 삶을 누렸다. 한마디로 환국은 자연과 인간이 극치의 조화를 이룬 시대였다.

 

홍익인간의 도를 전수 받은 환웅

마지막 환인천제로부터 국통 계승의 증표로 천부와 인을 전수 받은 거발환 환웅은 또한 국가 통치이념도 전수 받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었다. 한민족의 상고사를 제법 안다는 사람마저도 고조선의 국시國是로 잘못 알고 있는 홍익인간 사상의 연원이 사실은 9천 년 전의 환국인 것이다.

거발환 환웅은 재세이화在世理化를 기반으로 홍익인간을 실천하였다. 다시 말해서 삼신상제님의 진리, 즉 신교로 세상을 다스리고 깨우쳐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였다. 환웅이 재세이화와 홍익인간의 도를 실현하기 위해 취한 정치 제도 또한 신교에 바탕을 두었다. 그것은 삼신오제 사상에서 나온 삼백三伯·오사五事 제도이다.


단군왕검이 건국한 고조선

배달국 마지막 환웅인 거불단 환웅이 세상을 떠나고, 14세에 비왕裨王으로 임명되어 24년간 제왕 수업을 받은 단군왕검이 천제의 아들로 추대되어 제위에 올랐다. 단군왕검은 배달 말기의 혼란을 잠재우고 9환족 전체를 하나로 통일하여 새로이 조선朝鮮이라는 나라를 열었다(BCE 2333).

단군왕검은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아사달(지금의 흑룡강성 하얼빈)에 도읍을 정하였다. ‘아침 태양이 떠올라 빛을 비추는 땅’을 뜻하는 아사달은 송화강 유역에 위치하여 송화강 아사달이라 불린다. 그 후 22세 색불루단군은 남서쪽에 있는 백악산 아사달(지금의 길림성 장춘)로 천도하였고, 다시 44세 구물단군은 남쪽으로 더 내려와 장당경 아사달(지금의 요령성 개원시)로 천도하였다. 그리하여 총 마흔일곱 분 단군이 2,096년 동안 고조선을 다스렸다.

고조선은 신교의 삼신 가운데 만물의 질서를 바로잡는 치화신治化神의 도가 실현된 때이다. 그래서 단군왕검은 삼신의 원리에 따라 나라를 삼한, 즉 진한·번한·마한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이것이 바로 고조선의 국가 경영 제도인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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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여의 건국

대단군의 통치권이 약화되고 부단군과 지방 군장들의 목소리가 커지던 고조선 말기에 한민족의 새 역사를 개창한 분이 바로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이다. 해모수는 요하 상류에 위치한 고조선의 제후국인 고리국 출신으로 BCE 239년 웅심산(지금의 길림성 서란)에서 기두하였다. 그 후 백악산 아사달을 점거하고, 당시 고열가 단군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던 오가五加 부족장들의 공화정을 철폐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해모수를 단군으로 추대함으로써, 북부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BCE 232).

‘북부여’는 ‘북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이다. 고조선의 제3왕조 시대인 대부여의 북녘 땅을 중심으로 나라를 열었기 때문에, ‘대’자를 ‘북’자로 바꾸어 북부여라 한 것이다. 그것은 망해 가던 대부여의 정통을 계승하겠다는 해모수단군의 의지의 표명이었다.

 

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

북부여는 비록 고조선을 계승하였지만, 고조선의 전 영역을 흡수하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열국列國의 분열시대가 시작되어 고조선의 옛 영토에는 북부여, 동부여, 서부여, 낙랑국, 남삼한, 옥저, 동예 등의 여러 나라가 형성되었다. 열국시대는 그 후 사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 거쳐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로 변화하였다.

그렇다면 북부여의 국통은 어디로 계승되었는가? 고주몽이 세운 고구려로 계승되었다. 북부여의 고무서단군은 자신을 “천제의 아들(天帝子)”이라고 밝히는 주몽을 범상치 않은 인물로 여겨 둘째 딸인 소서노를 주어 사위로 삼았다. 아들이 없던 단군은 재위 2년 만에 붕어하면서 그에게 대통을 물려주었다(BCE 58). 고주몽이 북부여의 7세 단군이 된 것이다.

 

고구려를 이은 대진국과 그 이후

백제는 나중에 신라에 병합되었고(CE 660), 고구려는 나당 연합군에게 망한 후(CE 668) 유장遺將 대중상과 그 아들 대조영이 세운 대진국으로 이어졌다.

고구려가 망할 때 고구려의 유장 대중상이 동쪽으로 동모산에 이르러 성을 쌓고 새 나라를 열어 ‘고구려를 회복하여 부흥한다’는 뜻에서 나라 이름을 후고구려라 하였다. 대진국(발해)은 고구려의 후신인 것이다. 대중상이 죽고, 그 아들 대조영이 당나라군을 격파하고 6천 리의 강역을 개척하여 고구려의 옛 영토를 상당히 회복하고 국호를 대진大震이라 하였다. 진震은 동방을 뜻하므로 대진국은 ‘강대한 동방의 나라’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대진국은 신라와 달리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하여 고구려의 계승자로서 당당한 면모를 드러내었다. 대진국은 마침내 주변의 당, 왜, 신라 등이 조공을 바치며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부를 정도로 동북아의 강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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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출처: 환단고기 해제 (상생출판)